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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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경 尹餘慶

서울예술대 극작과 3학년. 1995년생.

arrebolada23@naver.com

 

 

 

돌연변이 고래

 

등장인물

자미: 22세, 유치원 교사, 여자

인간: 30대 추정, 남자

미호: 32세, 자미의 언니

남자: 50세, 자미와 미호의 아버지

 

무대

바닥은 모래로 깔려 있고 바위만 듬성듬성 있으며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무대 한편에는 알 수 없는 낡은 냉장고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어느 날 새벽.

파란 빛깔로 물들어 바닷속인지 아니면 밖인지 알 수가 없다.

고래의 울음소리와 함께 파도 소리가 퍼진다.

 

목소리 나흘 전 인천 앞바다에서 돌연변이 고래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속보 전해드렸죠? 오늘 새벽, 또 한구가 발견되었습니다. 인간과 혼종된 돌연변이 고래 사체는 미소를 띠고 있어서 더욱 기이한 느낌을 풍기는데요. 연구진들이 지금까지 발견된 돌연변이 고래 DNA를 분석한 결과 실종자 DNA와 일치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자살한 사람이 돌연변이 고래가 된다는 유언비어가 인터넷상에 퍼지고 있어 논란이……

 

앵커의 목소리가 괴상하게 찢어지며 사라진다.

황망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감돈다.

차가운 겨울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인간이 허공에 복싱 연습을 하며 뛰어온다. 인간이 자신의 가슴근육을 만지며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짓는다.

 

인간 난 너무 멋져. 대단해. 사랑해.

 

인간이 자기 몸에 키스를 몇번 한다. 다시 복싱 연습을 하다가 금방 지쳐 하며 바위에 쭈그려 앉아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낸다.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하는데 아주 낡은 의문의 냉장고가 비스듬하게 서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인간은 주변을 살피지만 아무도 없다. 인간은 담배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 냉장고 쪽으로 다가간다. 냉장고를 두드려보고 흔들어보는데 안에 무엇인가 들어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인간 버린 건가?

 

인간은 냉장고를 잠시 동안 쳐다보다가 문을 잡고 천천히 연다. 냉장고 안에 웅크린 자미가 있다. 온몸이 물에 흠뻑 젖은 자미가 바들바들 떨고 있다.

자미가 고개를 들어 인간을 본다.

인간은 아무 표정을 짓지 않은 채 무덤덤하게 말한다.

 

인간 안 추워?

 

자미가 고개를 끄떡인다. 자미가 인간의 손을 뿌리치고 냉장고 문을 닫는다.

인간이 다시 냉장고를 연다.

 

인간 나올래?

자미 싫어요.

인간 왜?

자미 무서워요.

인간 내가 여기 있을게.

자미 싫어요.

인간 그건 또 왜?

자미 피해 끼치기 싫어요.

인간 염병……

 

자미, 인간을 본다.

 

자미 근데 왜 말 놓으세요? 언제 봤다고……

인간 이 와중에…… 나 원 참. (공손하게) 나오시겠습니까요?

자미 제가 왜요?

인간 그럼 계속 거기 있을 거야? (차가운 표정으로) 너한테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닐 텐데. 영원히 그 세계에 갇힐 수도 있어.

 

자미가 인간의 기운에 살짝 움찔한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냉장고 밖으로 나온다.

고래 울음소리가 크게 퍼진다. 자미가 놀라며 귀를 막는다. 맨발에 상처가 많이 나 있는 자미의 다리. 인간은 자미의 다리를 보고 한숨 쉬며 고개를 젓는다. 자미는 눈치를 채고 어색하게 치마를 내리며 다리를 가리려고 애쓴다.

 

자미 여기가 어디예요?

인간 바다.

자미 (혼잣말로) 어느 바다일까요……

인간 (갸우뚱하며) 서울시는 아닐걸? 처음 듣는 질문이네. 충청도 관할 지역인가?

자미 근데 그쪽은 누구세요?

인간 나? 여유롭게 조깅하려는데 이상한 냉장고 발견하고 너 구해준 인간이랄까.

자미 (나지막이) 구해달라는 말은 안 했는데.

인간 여러모로 죄송하네요.

자미 이름은 어떻게 되세요?

인간 인간.

자미 보여요, 두발로 걸어다니는 거.

인간 아니, 이름이 인간이라고…… 인간아! (발끈하며) 조곤조곤 할 말은 다 하네.

 

인간이 담배를 꺼내서 담배를 피우려고 한다.

 

자미 (소심하게) 여기서 담배 피우지 마세요. 그거 환경 파괴예요.

인간 환경 파괴되기 전에 내 정신이 먼저 파괴될 것 같다.

 

인간이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다시 집어넣는다.

자미가 냉장고에 들어가려고 한다. 인간이 자미의 팔을 붙잡는다.

 

인간 뭐 해? 왜 또 들어가?

자미 이거 꿈이잖아요. 저 이런 꿈 자주 꿔서 익숙해요. 바닷속인지 아니면 바깥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혼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꿈.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알 수 없는 꿈. 꿈에서 깨려면 원래 있었던 곳으로 다시 들어가면 되더라고요. 근데 오늘은 이상하게 그쪽을, 아니지 인간님을 만났네요. 반가웠어요.(웃음) 저도 참…… 아무리 꿈이라고 해도 이름을 성의 없게 지었네요. 다음 꿈에서는 멋진 이름 가지고 올게요. 서강준이나 박보검 같은 이름으로?

 

인간이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자미 이제 눈떠야죠. 현실에서………

인간 정말 돌아가고 싶어? 그 현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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