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의 길

6·15 20주년 기념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의 대담

 

 

이남주 李南周

성공회대 교수, 세교연구소장, 본지 편집부주간.

 

임종석 任鍾晳

전) (사)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장, 문재인대통령 비서실장.

 

 

이남주 역사적인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았습니다. 한반도 정세도 중요한 분기점에 처해 있습니다. 이번 총선 결과 우리 정부는 교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더 적극적으로 진전시키려 노력해볼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호에서는 특별히 최근 남북관계의 변화를 평가하고 향후 발전방향을 논의해보는 대담을 마련했습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굳이 자세히 소개할 필요는 없겠지만 비서실장 당시에 4·27 판문점남북정상회담, 평양남북정상회담 등의 준비위원장 역할을 했고 판문점선언 이행위원장도 맡아서 일했습니다. 그리고 비서실장에서 물러난 이후 정계 진출이 예상되었으나 통일운동에 매진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총선 불출마선언을 했습니다. 사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6·15남북정상회담 이후 시작된 남북교류 과정에서 다양한 관련 사업을 해왔지요. 지금은 다시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장에 취임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6·15 20주년을 맞이하여 남북관계의 현재와 앞날을 이야기하는 데 가장 적합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동안 조용히 계시다가 총선 때 공개활동을 재개하셔서 보도가 많이 됐습니다. 인사를 겸해서 오랜만에 전국을 다니신 소감이 어떠했는지 듣고 싶습니다.

 

임종석 안녕하세요,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2주더라고요. 모처럼 즐겁고도 바쁘게 살았습니다. 공개활동이라기보다 작년 11월에 불출마를 말했을 때부터 선거에서는 제가 할 도리는 하겠다고 했습니다. 결과에 따라서는 문재인정부 하반기 국정운영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선거이니만큼 최선을 다해서, 가급적이면 신인후보들 위주로 도우려고 노력했습니다. 또 제가 관심을 두고 있는 남북문제와 관련해서도 무언가 꽉 막힌 현 상황에서 이번 선거결과가 남은 2년 동안에 돌파구를 낼 수 있냐 없냐 하는 정치적인 기로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보람도 있었고요.

 

반대를 뚫으려 했던 트럼프 대통령

이남주 보람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어렵게 모셨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지난 4월 27일에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2주년을 맞았습니다. 2018년에는 남북관계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고 생각했고 기대감이 굉장히 높았지요. 그런데 지금 현실은 그런 기대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2019.2.27~28)에서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 가장 중대한 전환점이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입니다. 그것과 함께 또다른 요인이 있다고 보시나요?

 

임종석 두가지로 봅니다. 먼저 하노이회담이 노딜로 끝난 것이 분명히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북으로 하여금 전략적 고민을 다시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게 제일 큰 것 같아요. 하노이회담까지 정말 숨 가쁘게 달려왔거든요. 우리 정부도 최선을 다했고 북도 새로운 방향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의욕을 보였기 때문에 저희는 남북 간에 더 할 수 있는 일조차 조금 아끼고 유보해두면서 북미회담에서 1단계 성과가 나도록 맞춰갔습니다. 1차 결승라인을 앞둔 지점이었는데 이게 노딜로 끝난 게 제일 안타까운 일입니다.

또 하나는, 남북이 양자 간 합의사항을 더 적극적으로 실행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북미회담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로 이끄는 데 결정적이었다고 하더라도 남북이 풀어야 할 문제를 뒤로 미루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해선 안 되고 마찬가지로 비중 있게 추진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2016~17년에 이루어진 대북제재들이 남북관계를 매우 크게 제약하고 있긴 하나 필요하면 제재위원회에서 적극적으로 우리의 입장을 개진하며 국제여론을 환기시키고 또 제재 안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은 과감하게 해가면서, 북미 간의 문제가 잘 풀리도록 중간자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북미관계가 어느 시점에 풀릴지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다면, 두번째 문제에서는 새로운 결심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것이 사실 오늘 대담에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드리고 싶은 얘기입니다.

 

이남주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회담에서 왜 실패했는가를 가끔 생각하게 되는데, 한번에 싸인을 안 해주는 트럼프의 협상 스타일이 그 요인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정치적 거래에서는 한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축적하고 이를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동력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기보다 매번 거래에서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내고 그것을 성과로 내세우는 것에 집착하는 스타일이지요. 유리한 입장에 서서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얻으려는 접근법과 비슷합니다. 이번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만 해도 논의돼서 올라간 걸 그대로 받지 않고 거기에 또 가격을 올리려고 했지요. 그런 습성을 당시에 잘 파악하지 못한 것도 문제가 아니었을까요?

 

임종석

임종석

임종석 트럼프 대통령을 평가할 때 사업가 기질, 이해관계를 아주 본능적으로 따져서 이익을 보는 면을 많이들 지적하지요. 그런데 저는 그보다도 미국 전체가 한반도 문제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게 훨씬 더 갑갑한 현실이라고 봅니다. 잘 아시지만 오바마 정부 8년 동안 단 한번도 한반도 의제를 백악관 테이블에 우선순위로 올려본 적이 없습니다. 국무장관부터도 동북아·한반도 문제를 다룰 때 우리가 합리적으로 풀어보려는 방식을 수용하려 하지 않습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라는 게 하루아침에 올 수 없으니까 북을 정당한 대화 상대로 인정해서 단계적으로 풀어가야 하는데 그러한 접근법에 부정적이지요. 우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렇게 공을 들였던 것도 그의 스타일이 오히려 미국 내의 그 많은 유보 내지 반대들을 돌파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습니다. 정말로 문재인 대통령께서 어마어마한 공을 들였거든요.

에피소드를 들려드리면, 4·27정상회담 전인 3월에 정의용 안보실장이 대북특사로 갔었지요. 돌아오자마자 바로 백악관에 갔는데, 아마 많이들 기억하실 거예요. 정의용 실장이 백악관 뜰에서 서훈 국정원장, 조윤제 대사를 양쪽에 두고 기자회견을 하는 정말 진기한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원래는 특사가 가서 카운터파트너와 얘기하면 그쪽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먼저 보고하고 그다음 날 만나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늦은 오후에 갑자기 한국의 안보실장을 만나자 해서, 그러한 과정 없이 바로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정의용 실장도 굉장히 당황했고요. 그래서 방문한 오벌 오피스(Oval Office, 백악관에 위치한 대통령 집무실)에 트럼프 대통령과 그쪽의 주요 책임자들이 스무명 가까이 앉아 있고 바깥 복도에 또 그만한 숫자가 서성대고 있었답니다. 그런 자리에서 정의용 실장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는데 뚜렷한 비핵화 의지를 가지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과 만남을 희망한다’라는 취지를 설명한 거고요. 트럼프 대통령 반응이, 대부분의 참모들한테 ‘거봐, 내가 뭐랬어, 맞지? 그래 맞아, 그거야’ 계속 이러더라는 거예요. 그 장면으로 미루어봐서도 내부 참모들은 다수가 부정적이었던 거예요.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를 풀도록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 면담 직후에 뜻밖에 트럼프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나는 좋다, 만날 의사가 있다, 그러니 당신이 가서 기자회견을 해라’ 그래서 정의용 실장이 당황한 거죠.

국무부를 포함해서 미국 정보부처와 백악관 핵심관계자들이 어느 정도로 이 문제에 부정적이냐를 보여주는 장면이 또 이어지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정의용 실장한테 그 자리에서 바로 그런 얘길 하니까 정실장이 그럼 맥매스터(H. McMaster) 보좌관(당시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하고 같이 하겠다 했어요. 그러니까 노노, 당신 혼자 하라고 그랬다는 거예요. 그럼 맥매스터하고 의논해서 내가 하겠다 했더니, 노, 그냥 당신이 하라니까.(웃음) 그러고는 거기서 회의 끝나고 기자실을 간 거예요. 그게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에 백악관 기자실에 처음 간 거래요. 기억하시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기자실 문을 열고, ‘하이, 조금 이따가 한국 안보실장이 중요한 발표 할 거다’라고 얘기하고 나가는 장면이 뉴스에 나왔지요. 그 장면에서 저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부의 엄청난 반대를 뚫고 뭔가를 만들어보려고 한 점을 평가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노이회담이 노딜로 끝나긴 했지만 그전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에서는 우리가 충분히 기대를 품어볼 만했습니다. 그럼 왜 결국 노딜로 갔느냐는 제가 자신있게 말할 순 없는데, 여러 스캔들로 미 국내에서 정치적으로 몰렸던 환경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하노이 가기 전에 이미 미국의 의회, 정부 부처, 조야 등 사방에서 배드딜보다는 노딜이 낫다고 계속 압박했던 상황이 결국 트럼프 대통령으로 하여금 더 나아가지 못하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판문점에서 처음 만난 김정은 위원장

이남주

이남주

이남주 북한 김정은체제가 처음 출발했을 때는 김정은 위원장이 너무 젊고 알려지지도 않다보니 그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것도 남북관계의 변화를 예상하기 어렵게 만든 원인 중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2018년 무렵에는 남북의 정상과 고위급 인사들 간 교류가 시작되면서 김정은체제에 대한 평가, 김정은 개인에 대한 평가가 많이 달라졌어요. 물론 아직도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르긴 합니다만 최소한 그전처럼 ‘어린’ 지도자가 출범했으니 몇년 안에 붕괴될 것이라는 전망은 거의 사라진 것 같습니다. 교류 과정에서 과거 어느 때보다도 고위급 사이의 접촉이나 비공식적인 만남이 많았던 시기라고도 볼 수 있겠는데요. 지금도 상황이 대단히 어려워졌음에도 불구하고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나와 김정은 위원장 사이의 신뢰와 평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바탕으로 평화 경제의 미래를 열어나가겠다”라고 신뢰를 다시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직접 경험하신 입장에서 북한 지도자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가졌는지, 그리고 남북관계에 대한 북의 태도를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임종석 4월 27일 판문점정상회담을 앞두었을 때의 제 소회를 말씀드리면, 정말 궁금하고 기대도 됐어요. 저도 북쪽의 새로운 리더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거든요. 말씀하신 것처럼 젊은 나이에 그 복잡한 환경에서 국가권력을 짊어지게 됐는데, 언론이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꽤 짧은 시간에 안정적으로 권력을 장악했죠. 국무위원회로 상당히 빠른 전환을 하는데, 9인 구성인 국무위원회에 군인은 세명밖에 두지 않습니다. 그 얘기는 군을 완전히 다스렸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이제는 선군정치 대신 정상적인 국가운영으로 들어간다는 내부적 선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젊은 지도자의 권력 장악 속도가 굉장히 빠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제가 진짜 궁금했던 것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였어요. 앞으로 20년을 하게 될지 30년을 하게 될지 모르는데 정말로 생각이 다르거나 또는 일부 보수언론이 말하는 그런 걱정스러운 모습이라면 그건 정말 큰일 아닙니까. 그래서 진짜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많이 하고 갔는데요, 회담 내내 배석해서 계속 두 정상의 대화를 지켜봤는데, 뭐랄까요, 끝나고 나서의 제 느낌은 안심과 기대였습니다. 우선은 캐릭터가 굉장히 솔직했어요. 솔직하면서도 당당한. 대통령과 이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상당히 확고한 의지를 읽을 수가 있어서 무척 안심했습니다.

뜻밖에 한달도 채 안 돼서 북쪽에서 통일각에서 다시 만날 수 있겠느냐 했는데, 제 기억에는 그사이에 북미 간에 불필요한 말싸움이 있었어요. 북쪽에서 펜스 부통령을 걸어서 비판을 하자 트럼프 대통령도 ‘안 만나도 상관없어’ 하는 식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런 상황에서 북쪽 입장에서는 모멘텀을 이어가기 위해 급하게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정말로 급하게 제안해온 겁니다. 대통령께서 하루 만에 흔쾌히 수락해서 다녀오셨고 그다음 날 국민들께 앞으로는 필요하면 얼마든지 ‘이웃집 마실 가듯이’ 만나겠다 했던 거죠. 일단 첫 소회는 그렇습니다.

 

이남주 2018년에 정상회담이 자주 열린 것도 매우 이례적이기는 했습니다. 그것이 남북 정상 사이의 신뢰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었겠지요.

 

임종석 김대중 대통령 때를 보면 정상회담을 여러 조건 때문에 평양에서 먼저 했는데 답방을 약속받았으나 실현이 안 되니까 멈춰 섰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정상회담이 너무 늦었고요. 이런 과거를 통해서 회담 장소를 평양과 서울로만 고집할 것이냐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재인정부에서 굉장히 잘한 일 중의 하나가 판문점을 정상회담 장소로 기획해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정상회담의 상시화, 일상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려면 판문점만 한 장소가 없다고 봐요. 오래 단절된 구조에 있다보니 비상한 결심과 합의가 없이는 무언가 진행이 안 되는데, 반드시 중요한 결정이 있지 않더라도, 필요할 때는 성과도 내고 오해가 생기면 바로바로 풀기도 하는 식으로 정상 간에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해져야 한다는 점에서도 판문점회담을 기획하게 된 것이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저희가 처음부터 생각했던 건 아니지만 2018년 4·27정상회담 바로 한달 뒤인 5월 26일에 또 만났잖아요. 대통령께서 그다음 날 발표하신 내용 중에 ‘이웃집 마실 가듯이’라고 한 것도 남북 간에 필요하면 두 정상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시대로 가겠다는 것이지요. 저는 지금 그걸 해야 될 때라고 생각해요. 대통령께도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상회담이 필요하면 언제든 만나겠다고 했던 것을 지금 실천해야 한다고. 마찬가지로 김정은 위원장에게도 어떤 계기마다 성과만 내려고 하는 정상회담은 오히려 짐이다, 이럴 때일수록 정상 간에 직접 여러 정세에 대해 토론하고, 상대방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이해한다면 결국 어떤 성과로 더 잘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걸 강조하고 싶습니다. 요즘 같은 때에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만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답방하기에 어려운 그쪽의 사정이 있는 거잖아요. 우리로서도 부담인 것이 사실이고요. 우선 그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남주 더 많은 얘기가 있을 것 같은데 여기까지 하시는군요.(웃음) 남북 간 신뢰와 관련해 최근에 의외의 사건이 하나 있었어요. 북의 ‘초대형 방사포’ 발사에 대해 청와대가 강한 유감을 표명했는데 이에 대해 4월 3일 북한 김여정 제1부부장이 상당한 힐난조의 메시지를 청와대를 향해 발신했습니다. 물론 그다음 메시지는 좀 다른 방향으로 나오긴 했지만요. 그걸 들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임종석 북쪽의 담화나 개인 논평이 나왔을 때 제가 제일 먼저 느끼는 건 참 표현이 우리 상상을 뛰어넘는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웃음)

 

이남주 한 문장 소개하면, “겁을 먹은 개가 더 요란하게 짖는다고 했다”라고 했지요.

 

임종석 저는 북쪽이 의미있는 입장을 낼 때는 표현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봅니다. 대내적인 표현이 아니라 외교적 관례와 국제적 통념을 고려하면 좋을 것 같은데, 아쉽죠. 북쪽 표현에서 특이함을 빼고 본다면 결국 이거죠. 아니, 당신들은 우리보다 더 하면서 왜 우리가 우리 군사훈련하는 걸로 감 놔라 배 놔라 하냐, 당신들은 군사훈련하고 신무기로 무장하면서 우리는 넋 놓고 있으라는 거냐, 뭐 이런 얘기인 거잖아요. 저는 차제에 이 문제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이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전략미사일을 실험·생산하는 문제와, 재래식 무기를 개발하면서 훈련하고 시험하는 문제는 확실히 구별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도 연중으로 훈련하고 국방과학연구소에서 계속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면서 기본적으로 한 국가로서 안보에 대한 자강능력을 갖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다양한 미사일들 시험발사도 하고요. 그리고 최근에 신무기도 많이 수입했죠. 국민의정부 출범 이래 국방비가 제일 가파르게 증가한 때가 1위 노무현정부, 2위가 문재인정부입니다. 북은 우리보다 작은 규모의 훈련을 한달지 또는 어떤 재래식 무기를 개량하고 생산하면서 그걸 시험한달지 하는 것을 자위권에 해당하는 문제로 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한번 정리를 하면 좋겠다는 것이고요. 트럼프 대통령의 스탠스가 딱 맞는 거 같아요. 심플하더라고요. 작은 무기들? 그건 어느 나라나 한다, 신경 쓰지 않는다. 이게 트럼프 대통령의 일관된 얘기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북이 재래식 무기를 시험발사할 때마다 어떤 관성으로 습관처럼 반응을 해요. 더군다나 통일부가 앞장서 입장을 낼 일은 아니에요. 국제사회가 우려하고 금지하는 일정 수준 이상의 무언가로 가는 걸 막고자 하는 것이지 북이 스스로 필요한 안보상황에 조치하는 것까지 우리가 문제 삼자고 들면 오히려 문제를 풀 수 없죠. 김여정 부부장이 이야기했다는 건 북이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로 낸 겁니다.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것에 책임감 가져야

이남주 다시 시기를 거슬러 올라가 얘기해보고 싶은 것이, 2017년부터 18년까지 정세가 급변했는데 그걸 가능케 한 요인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우리 정부는 스스로의 주도적 역할을 많이 얘기하고, 일각에서는 제재가 강해졌기 때문에 북한이 나온 것이라고도 합니다. 북쪽이 비핵화나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가 있어서가 아니라 강제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는 식의 해석이지요. 2018년 4월 정상회담까지의 정세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임종석 저는 기본적으로는 한국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게 가장 큰 모멘텀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확고한 의지를 보였고, 또 북쪽에 그걸 다양하게 전달했지요. 북쪽 입장에서도 과거 10년과는 다르게 6·15와 10·4(2007) 선언을 계승하면서 이를 더 발전시키고자 하는 문재인정부가 들어왔을 때 기대를 가졌을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봅니다. 그래서 북쪽도 매우 적극적으로 나왔는데 이를 보면 문제를 푸는 방향으로 환경이 조성되면 북한도 그렇게 하려고 한다는 겁니다. 결국 복합적인 것일 텐데요, 그러니 제재가 강해졌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나왔다고 보는 건 문제를 너무 단순화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남주 그 시기에 뭔가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 중요한 전환점이나 계기가 무엇이었을까요?

 

임종석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 중 하나인데요, 북이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나온다면야 우리가 북에 제재도 하고 적대정책도 펼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문제를 풀어보겠다는데도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고 굉장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적어도 이만큼 발전한 대한민국의 국력과 수준이라면 북이 진정으로 핵을 포기하고 경제발전으로 가겠다고 할 때는 이 문제 풀어야지요. 4·27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둔 4월 20일에 북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열어서, 김정일체제에서 가져오고 김정은 위원장 본인도 집권 후 2013년에 재확인했던 핵·경제 병진노선의 공식 폐기와 경제건설총력집중노선을 선언합니다. 역사적인 4월 27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미 선조치를 한다고요, 와서 들어보고 하겠다는 게 아니고. 그뿐 아니라 풍계리 핵실험장 닫겠다, 동창리 발사대도 해체하겠다, 그리고 핵실험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지하겠다, 이걸 다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무슨 성명도 아니고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를 통해서 결정하고 대내외에 공표한 거거든요. 그러고서 4월 27일 정상회담에서 김위원장이 자기 의지를 우리 대통령에게 분명하게 표현했기 때문에 대통령께서도 이거 해볼 수 있겠다고 해서 엄청난 공을 들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일차적으로는 북미 간에 성과가 나도록 하고 그걸 위해서 남북 간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여러 조치를 동시에 해나갑니다.

 

ⓒ 김준연

ⓒ 김준연

 

기왕 얘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보태면, 북이 진짜 핵을 포기하겠느냐는 얘기들을 여전히 많이 하잖아요. 근데 제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게 하노이 노딜 이후에 북이 보여준 모습이었어요. 김위원장이 하노이까지 65시간을 기차 타고 오지 않았습니까? 안타깝기도 하고 무언가 공감도 됐던 것이, 싱가포르 때처럼 중국 신세 지기가 싫어서 기차로 그 먼 길을 온 거예요. 그런데 결국 안 됐잖아요.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는 뜻밖의 상황을 맞이한 거죠. 영변 핵시설 해체를 제시했는데, 저는 사실 여길 해체하면 이른바 불가역적인 과정이 시작된다고 봅니다. 물론 남는 게 있죠. 우라늄 핵시설도 있고 일부 연구시설도 남겠지만, 풍계리 닫고 동창리 해체하고 거기다 영변 포기한다고 하면 한번에 다 완성되는 건 아니라도 분명히 불가역적인 중요한 지점을 넘어가는 건데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걸 안 받아들였습니다. 회담 끝나고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간담회를 열었는데 요지인즉슨, 북한이 상당수 프로그램을 비핵화할 준비가 돼 있지만 그게 모든 비핵화는 아니다, 북한은 대북제재의 완전한 해제를 원했는데 미국은 그걸 들어줄 수 없다는 겁니다. 폼페이오 장관이 다시 얘기했죠. 영변 핵시설 해체한다고 해도 그외의 시설들이 남아 있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 여기서 정말 이례적으로 북한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부상이 다음날 즉각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합니다. 그게 저는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당연히 김정은 위원장의 현장 지시에 의해서 이뤄졌을 텐데, 북이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이 문제를 풀어보려고 하는지가 그 회견에 들어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회견 때 얘기가, 북이 요구하는 건 전면적인 제재 해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유엔이 2016년부터 17년까지 여섯건의 제재를 결의했는데, 그중 하나는 개인과 기업에 대한 거고 나머지 다섯건 중에서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일부 문제를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었다, 거기 상응해서 영변을 포기하겠다는 취지였다고 설명합니다. 사실 저희는 이 정도는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북에 대한 제재라는 게 2006년부터 17년까지 11건이 있는데 2016년 전까지는 북한의 핵이나 전략무기, 그러니까 국제사회 입장에서 보면 불법적인 행위를 제재하겠다는 것이었고요, 16년에서 17년 사이에 가해진 규제는 북한 자체를 불법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경제활동을 완전히 봉쇄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이 후반부 것을 완화하면 자신들도 불가역적인 지점으로 들어가겠다는 딜이었는데 이걸 못 만들어낸 겁니다. 너무 안타깝죠. 적어도 북한이 하노이에 가서 뭘 주고 뭘 받으려 했는지가 분명하게 확인이 되었는데, 그것까지 의심하고 요구를 높이면 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개인 의견으로 누가 얘기한 것이 아니라 북한의 최고 리더가 현장에 있으면서 외무상과 부상이 이렇게 발표한 건데. 그래서 저는 북이 지금의 이 방향을 포기하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이 우리한테 있다는 겁니다.

 

결국 우리의 역할이 중요

이남주 북미관계가 교착되었음이 하노이회담을 거치며 명확해졌지만, 사실 4월 27일에 판문점선언을 하고 여름을 지나는 국면에서부터 북미대화가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지요. 그 상황에서 평양정상회담(2018.9.18~20)이 결국 열리는데 그때도 제가 이해하기로는 남북정상회담에 다소 회의적인 분위기가 우리 내부에 있었어요. 그렇지만 어쨌든 평양에 간 것 자체가 북미회담이 교착된 상태에서 우리가 우리 힘으로 풀어보려는 어떤 동력을 만들자는 의지의 표명이었고 그 회담에서 9·19남북군사합의까지 이루어냈지요. 그때는 어떤 생각이셨어요?

 

임종석 말씀하신 대로 하노이회담 전에 이미 미국 내에 여러가지 불편함과 반대가 감지됐지요. 그걸 남북이 직접당사자로서의 주도력을 높이고 모멘텀을 유지해서 하노이에서 성과를 내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한 거죠. 평양선언 전에 남북 간에 굉장히 많은 실무접촉이 있었습니다. 특히 연락사무소 설치와 군사합의서를 위한 회담을 수도 없이 했어요. 그 과정에서 미국과도 끊임없이 소통했습니다. 중요한 시기에는 정의용 실장이 한달이면 20일 이상을 볼턴(J. Bolton, 당시 미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하고 통화했던 것 같아요. 그런 노력들 덕분에 끌고 갈 수 있었던 거고요. 한미연합사 브룩스(V. Brooks) 전 사령관이 상당히 합리적이고 협력적이어서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유의미한 군사회의가 이루어지기도 했는데요, 그런 성과들이 한창 진행될 때 재미있는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스티븐 비건(Stephen Biegun)이 그 무렵 여름에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로 임명됐는데 꽤 압박을 가합니다. 말하자면 자기가 다시 업무파악해서 ‘오케이’하기 전까지 ‘올 스톱’하라는 거예요. 우리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미국하고 의논을 안 해왔으면 모를까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에 정상을 제외한 최고위급에서 소통이 이루어지고 여기에 한미연합사하고 거의 매일이다시피 이야기하면서 만들어온 걸 특별보좌관 한명 임명됐다고 상황을 스톱시킬 수는 없잖아요. 그때 우리 내부의 모습이 우리가 극복해야 할 지점인지도 모르겠어요. 외교부 스톱, 통일부도 얼음 땡…… 청와대에서도 뒤로 갈수록 일부는 부담스러워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대통령께 보고드렸고, 대통령께서 연락사무소 설치와 군사합의에 관한 남북 간 합의사항을 승인하시고 밀고 가신 거거든요. 도장을 찍은 거죠, 비건이 들어오기 전에.

 

이남주 그게 끝나고 비건이 들어온 건가요?

 

임종석 싸인하고 이틀 뒤엔가 한국에 들어왔어요. 본인이 들어올 때까지 스톱하라는 걸 우리가 안 들어준 건데요, 물론 그다음엔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충분히 예우해줬죠. 안보실장이 만나도 주고, 그 자리에 대통령께서 잠시 들러서 격려도 하시고. 북한에도 이 사람은 중요한 사람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문제를 풀어보라고 특별히 임명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 사람은 성과를 내려고 할 거다라고 얘기했어요. 아무튼 제가 그때 우리 관계부처들의 모습을 보고는, 남북 간에 뭔가를 밀고 가려면 우리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태도라고 느꼈습니다. 제가 당시에 관련된 공무원들에게 몇번 한 얘기가 있어요. 왜 이렇게 한미동맹을 우습게 아느냐, 한미동맹은 여러분의 생각보다 훨씬 세다, 우리가 이렇게 판단하고 진행한다고 해서 한미동맹이 흔들리지 않으니 걱정 말고 하시라…… 그래도 힘들어요. 미국에서 우리로 치면 국장급 실장급이 안 된다고 하면 우리는 부서 전체가 아무런 결정도 못하는 지금 같은 태도로는 우리가 더 역할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남주 남북관계 발전과 한미동맹이 함께 갈 수 없다는 시각이 진보와 보수 양쪽에 모두 존재합니다. 한쪽에는 남북관계를 위해서는 한미동맹이 깨져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한미동맹을 위해서는 남북관계가 거기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지금 말씀은 서로 충돌하지 않고 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임종석 당연하죠. 깨져서는 안 되고 깨지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한미동맹은 수십년을 지속해온 전방위적인 동맹이에요. 그리고 지금 우리가 남북 간에 하려는 것은 국제적인 동의도 받고 있는 일이고 막상 논의하면 미국도 부정하지 못하는 일들이에요. 미국 입장에서도 궁극적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우리가 역할을 더 해야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결정하고 집행하는 수준을 높여야 된다는 겁니다. 제가 총선 이후, 문재인정부 후반기 2년 동안에 뭔가 성과를 내기 위해서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로 강조하고 싶은 것이 대담 시작 때 말씀드린 우리의 이런 자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이걸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하게 가지고 계세요. 제가 모실 때 몇번 이런 문제로 보고드릴 때마다 확고하셨어요. 다만 하노이회담을 앞두고 일부 유보했던 적은 있어요. 뭔가 만들어내기 위해서. 그런데 만약 올해도 북미 간에 진전이 없다면 미국과 충분히 소통하되 일부 부정적인 견해가 있어도 일을 만들고 밀고 가려 하실 겁니다. 지금 이 태도가 제일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가지 실무적으로 바꿔야 할 과제도 있는데요, 먼저 유엔 제재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일을 정부 차원에서 해야 합니다. 제재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게 많아요.

 

적극적인 해석과 실행이 필요한 때

이남주 지난 4월 27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도 대통령께서 국제적인 제약 때문에 어려움에 빠진 객관적인 한계 속에서도 우리가 현실적으로 조금씩 나아갈 수 있는 노력을 하겠다는 말씀을 했지요. 그와 연관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한걸음 나아갈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습니다.

 

임종석 기본적으로는 남북 간에 이미 합의했던 4·27판문점선언의 정신, 그리고 9·19평양선언에서 합의한 것들을 우리가 실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저는 북도 반응할 거라고 봐요. 그 신뢰가 높아지지 않으면 제가 앞서 말씀드린 정상 간의 일상적인 만남이나 국제사회를 설득하기 위한 작업이 안 된다는 거죠. 몇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지금도 인도적 협력사업은 할 수 있어요. 근데 이렇게 찔끔찔끔 할 게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의 힘들을 활용하면 돼요. 우리 지방정부 단체장 중에서 적극적인 분들 많습니다. 현재 이렇게 경제제재가 집중되어 있긴 하지만, 북한에 필요한 물건들, 예를 들면 콩기름이나 비닐박막 사업 같은 것들은 일상적으로 계절에 따라 협력하자는 겁니다. 중앙정부가 갖고 있는 협력기금도 있고 광역단체, 기초단체들도 일정 규모 이상의 능력과 의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미 대통령께서 밝히셨지만 관광은 적극적인 해석을 통해 과감하게 해야 돼요. 원산하고 설악지구 연결해야죠. 이번에 동해 북부선을 연결한다고 정부가 발표했는데 이런 일들도 당연히 그렇고요. 그뿐 아니라 경의선 작업이나 이미 합의했던 산림협력도 저는 할 수 있다고 보는데요, 제재에 대한 해석에서 막혀 있어요. 미국은 제재의 판정기준을 월경(越境)으로 적용해요. 물자가 넘어가면 무조건 제재 대상인가 아닌가를 판단하고 규제를 하려고 합니다. 말이 안 되는 거거든요. 제재정신은 그게 아니에요. 이전(移轉) 기준이어야죠. 제재 물품을 이전해준다면 국제사회의 룰을 깨는 것이라 안 되지만 단순히 갔다가 오는 걸 제재 대상이라고 볼 것이냐? 지금 미국은 계속 우리한테 그렇게 요구하지만, 저는 우리가 적극적인 해석을 통해서 국제사회의 여론을 환기시키고 미국을 설득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그렇게 얘기한다고 해서 아, 그래요? 하고 말 문제는 아니라는 거예요. 그럼 아무것도 못합니다. 이 문제를 우리가 해결하면 산림협력이든 철도·도로 연결이든 진행할 수 있습니다. 기본조사 진행하고 양쪽이 계획 세우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러나 착수를 하면 양쪽이 실질적인 협력단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거예요. 철도·도로도 아주 현실성 있는 집행 직전 단계까지 갈 수 있어요. 그렇게 하면서 핵 문제와 제재 문제를 푸는 노력을 동시에 해야지 지금처럼 제재를 너무 방어적으로 해석해서는 절대로 남쪽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유엔사도 마찬가지인데, 말도 안 되는 월권을 행사하려 해요. 통과하는 거 확인만 하면 그만인 것을 통과를 시킬지 말지 무슨 권한이 있는 것처럼…… 빨리 정상화해야 할 문제입니다. 또 하나 제가 실무적으로 꼭 극복했으면 하는 것은, 한국과 미국 정부가 남북협력, 그리고 그에 따른 대북제재 관련 사안을 조율한다는 취지로 운영하는 워킹그룹에서 통일부가 빠져야 합니다. 그건 대북협력의 주무 부처로서 통일부에 독이 되는 거예요. 통일부를 위해서도 안 나가는 게 좋아요.

 

이남주 조율한다는 취지로 운영을 시작한 워킹그룹이 사실상 남북 교류사업에 제동을 거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이 제기되었지요. 통일부가 최근에 한번 안 나갔죠.

 

임종석 한번 그런 적이 있는데 다시 복귀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정확하게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을 그쪽에 전달해주고 안 나가면 됩니다. 조율은 기본적으로 국무부하고 외교부가 하는 거예요. 통일부는 빠져야 남북협력의 주무 부서로서 역할을 할 수 있지요, 통일부가 실무 수준에서 제재결의에 대한 엄격한, 경우에 따라서는 과도한 해석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은 워킹그룹에 들어가 있어서야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까지 말씀드린 과제들 정도는 당장 극복하고 나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이걸 한다고 한미동맹이 흔들릴 리도 없을뿐더러 북이 지금처럼 핵실험이나 전략미사일 생산·실험을 유보하는 모멘텀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이것만 해도 올해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습니다.

 

이남주 저도 남북관계에서 한국이 역할을 하려면 제일 중요한 게 말씀하신 것처럼 미국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 더 보태면, 군사합의 문제도 있거니와 군사적 신뢰구축이 남북 간에 대단히 중요한데 지금 우리가 국방비를 굉장히 증가시켰잖아요. 여기에 대해서 시민사회 쪽에서는 상당한 불만도 있습니다. 우리가 군비를 증가시키면서 북쪽한테는 그러지 마라 하는 논리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죠. 코로나19 이후로 우리가 어차피 예산 조정하면서 국방비를 삭감했는데요, 앞으로도 경제적으로 상당한, 어쩌면 더 큰 위기가 올 것 같고 전세계적으로도 그런 문제가 있어서 차제에 우리가 군비를 관리하면서 북한이 미사일 쌍중단 국면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신뢰구축프로세스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임종석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노무현정부와 문재인정부에서 국방비가 가파르게 늘어난 데에는 전시·평시 작전권을 정상화하는 문제와 더불어 정치적인 이유도 작용했습니다. 저는 이걸 합리적인 수준에서 제어하는 방법 또한 오늘 말씀드린 내용과 연관된다고 봅니다. 정상도 수시로 만나야 하지만 군 당국자들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군사합의서에서 상당히 의미있는 내용들을 합의하고, 그걸 위해서 군사공동위원회 구성하기로 했는데 지금 안 되고 있거든요. 일상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면 서로 간에 필요한 정보도 교류할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서는 서로의 훈련도 참관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되면 우선 보수진영 정서를 감안해야 하는 정치적인 요소는 해소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남주 6·15선언에서 아주 중요한 합의가 통일방안에 대한 것입니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제2항) 문재인정부에서 진행된 북한과의 대화가 많았지만 통일방안과 관련돼서 진전된 논의나 상황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6·15의 그 조항이 지금도 북한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여전히 유용한지 혹은 거기에 어떤 고려사항들이 더 반영되어야 할지 등 통일방안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임종석 제가 생각하는 방안이라는 게 따로 있는 건 아니고, 그때의 합의는 분명히 의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사실상의 통일,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관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경우에 따라서는 통일 얘기를 뒤로 미뤄놓아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통일방안에 대한 논의를 지금 현안으로 가져오는 것이 저는 그다지 실용적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당장 결론 낼 수 없는 얘기이기도 하고요.

 

이남주 작년 1월에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통일방안의 필요성을 제기한 만큼(“북과 남은 통일에 대한 온 민족의 관심과 열망이 전례없이 높아지고 있는 오늘의 좋은 분위기를 놓치지 말고 전민족적 합의에 기초한 평화적인 통일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하며 그 실현을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나가야 할 것입니다”) 상황이 진전되면 이 문제가 다시 부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또 남북협력이 진전되면 이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발전시켜갈 수 있는 거버넌스를 필요로 하게 될 거예요. 일부에서는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운영, 정기적 정상회담, 군사공동위원회를 비롯한 각 공동위원회의 가동 등으로 사실상 남북연합이 시작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임종석 남북협력이 강화되면 자연스럽게 제기되겠죠. 저는 지금은 학계에서 논의하는 정도가 좋겠다는 입장입니다.

 

협력사업을 위한 ‘1.5트랙’에서의 역할

이남주 모처럼 모신 만큼 개인적인 상황 관련한 질문도 드릴게요. 작년에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통일운동을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실장님의 지난 활동들을 감안하면 갑작스러운 행보는 아닐 수도 있지만,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가 뚜렷한 상황에서 통일운동에 나서겠다고 하니 의외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구상하시는 통일운동이 시민사회에서 생각하는 통일운동과는 좀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 활동을 생각하고 계시나요?

 

임종석 이전에 활동하던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에 이사장으로 복귀하려 합니다. 제가 2000년에 국회의원이 되었는데 그때부터도 저는 남북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숙명처럼, 사명처럼 생각해왔습니다. 2003년에 남북 교류를 위해 전세기로 평양에 방문했습니다. 그 준비를 위해 사전에 금강산 가서 승부도 봤고요. 술로.(웃음) 250명쯤 갔는데 인천공항 게이트에서 서울-평양 불 들어오는 게, 그때는 참 감격적이었어요. 그 뒤로도 몇번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우리 비행기로도 가고, 고려항공이 인천공항에 왔다 갔다 데려다주기도 했지요. 그런 활동의 결과로 2004년에 경문협을 만들었는데 그 취지가 6·15선언하고 관계된 겁니다. 정부 간의 관계가 좋지 못할 때에는 민간 부문의 사회적 교류나 경제협력을 정부가 일일이 연결해줄 수 없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남북을 잇는 신뢰의 다리를 하나 놓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경문협이 북쪽의 카운터파트너와 확고한 신뢰를 쌓아서 경제협력, 사회협력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편하게 연결해주고 성과를 내도록 해주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코딱지만 한 사무실이었지만 문턱이 닳을 정도로 사람이 많이 드나들었어요. 한번은 현정화씨가 와서 이분희 선수를 만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본 적도 있었습니다. 정부가 해줄 수 없는 일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과정에 저희가 지속적이고 제도적인 협력사업이 되겠다 해서 제일 먼저 손댄 게 저작권 사업인데요, 지금까지도 남북 간에 양 정부가 승인해서 제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유일한 사업입니다. 북쪽과의 모든 저작권 계약은 경문협을 통해 하게 돼 있고 방송사들도 조선중앙방송에 대해 보통 일이년 지나 계약 갱신해야 하는데 경문협을 통하지 않으면 화면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저희를 많이 핍박하면서도 문을 닫게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지금은 지적 재산권 전반으로 확대하는 단계로까지 논의되고 있어요. 그외에도 북쪽의 인력 육성을 지원한달지 사회 각 분야의 막혀 있는 사업들 재개를 지원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고요. 북이 최근에 통일부뿐 아니라 민간 분야에 대해서도 전혀 반응하지 않고 있는데 깊은 전략적 고민에 들어가 있다고 봐야 되겠죠. 그래도 유독 저희와는 크고 작은 일들을 진행하고 있어서 역시 신뢰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남주 독자분들도 그같은 과정을 듣고 나면 통일운동을 하겠다고 밝힌 것이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느낄 수 있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려고 하나요? 여전히 정치와의 관계를 궁금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임종석 제가 지금 북쪽 구조를 다는 모르겠는데 북에서 정부 간 교류는 아니지만 완전한 민간도 아닌 1.5트랙 교류를 관리하는 책임이 아태(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에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거기 김영철 위원장이 북쪽 최고지도부와 신뢰관계에 있기 때문에, 저는 할 수만 있다면 아태 및 김영철 위원장(노동당 부위원장) 등을 자주 만날 수 있도록 만들어서 1.5트랙에서 남북 간의 협력을 지원하는 역할까지 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불출마하면서 이런 일을 상징적으로 통일운동이라고 말한 건데 정치에 관한 한 제 고민은 이렇습니다. 남북문제에서의 어떤 변화와 함께 정치적 역할이 있으면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그게 꼭 제도정치여야 한다면 솔직하게 설명드리고 그걸 할 겁니다. 다만 그것이 아닌 조건에서의 일반 제도정치에 계속 몸담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민간 영역에서 신뢰관계를 쌓으면서, 1.5트랙의 어떤 선에서 정부 간의 소통을 지원하고 민간분야에서도 실질협력을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합니다. 최근에 저희 재단 식구들이 뜻있는 우리 지방자치단체도 많이 찾아다니고 있고, 작지만 인도적 협력사업도 하는 등 일고여덟가지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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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주 어쨌든 남북관계 발전과 연관된 역할 범위 내에서 생각하겠다는 거군요.

 

임종석 그런 일을 더 잘할 수 있기 위해서 정치적 역할이 필요하다면 그건 제가 마다할 생각이 없다는, 그런 상태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꼭 덧붙이고 싶습니다. 노태우정부가 1992년에 남북합의서를 체결하고 러시아, 중국과 수교를 하면서 북방정책을 추진한 점을 주목하고 높게 평가합니다. 매우 훌륭하게 시대 변화에 대응했다고 생각해요. 아쉬운 대목은 결국 북방정책의 핵심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남북협력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고립시키는 방향으로 길을 잘못 잡았다는 점입니다. 남북 인구를 합하면 8천만, 중국의 동북3성이 1억 1천만, 러시아의 극동지역이 6백만입니다. 산술적인 인구 규모를 넘어 경제적으로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지역이기도 하지요. 이 지역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구상하는 담대한 비전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여기에 대한민국과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들어 있습니다.

 

2년 안에 의미있는 진전 이루어야

이남주 남북관계 전환을 위해서 할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특히 여러 이유로 올해부터 내년까지가 상당히 중요한 국면으로 조성되고 있습니다. 일단 총선을 거치며 한국은 태세를 갖춰갈 조건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외부환경을 보면 미국 대선이 있고 세계적으로는 코로나19 문제도 있고 해서 녹록지 않습니다.

 

임종석 올해에도 북미 간에 진전이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고민을 정부든 민간영역에서든 매우 깊게, 그러나 빨리 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안을 짜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저는 문재인정부의 남은 2년 동안에도 아무것도 못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대선이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특히 미국은 대선이 가까워지면 새로운 사업에 대한 의회의 견제가 강해지기 때문에 올 상반기가 이대로 넘어가버리면 트럼프 행정부 안에서조차 쉽지 않을 수 있고요.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하든 민주당이 집권을 하든 간에 북미관계는 변수가 많습니다. 우리가 수없이 경험했듯이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설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은 결국 우리에게 있다는 생각을 확고하게 해야 하고, 더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남북 간에 대해서 북한도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언제까지 미국하고 결론이 안 나면 스톱할 건지, 북한도 진지하게 고민해주길 저는 바랍니다. 정말로 비핵화와 경제 집중으로 가는 것이 미국과 합의가 안 되면 못하는 일이냐?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우리도 좀 달리 생각하고 북한도 그렇고요. 물론 한계는 있죠. 엄연히 미국 중심의 국제제재가 턱밑까지 와 있기 때문에. 그러나 그걸 완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도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좀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국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도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는데 우리가 활용을 못하고 있어요. 이런 국제적 관계를 활용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단호한 우리 결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말하면 북미 간에 안 풀릴 때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오늘의 화두로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남주 오늘 대담을 통해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과 어떤 자세로 이 상황을 돌파해갈지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독자들을 대신해 감사드리고, 마지막으로 이 시점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들으면서 대화를 마무리하겠습니다.(웃음)

 

임종석 특사나 가야 만날 수 있을까, 가능성이 있는 질문인지 모르겠습니다만.(웃음) 판문점정상회담을 할 때 저는 주로 듣는 입장이었습니다만 우연히 김정은 위원장에게 말을 건넬 기회가 있어서 그때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다시 하고 싶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에 꼭 같이 성과를 내주십시오.’ 문재인정부 남은 2년 안에 매우 의미있는 지점까지, 남북관계의 어떤 주도력을 통한 협력의 진전을 가급적이면 불가역적인 어느 지점까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협력과 결심으로 이루면 좋겠다는 말, 그때와 꼭 똑같은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2020.4.30. 창비서교빌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