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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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민 田承珉

서강대 영미어문학과 4학년. 1990년생.

nrz5haeyo@naver.com

 

 

 

레즈비언 구출하기: 침묵, 방백, 그리고 대화

 

퀴어와 페미니즘 사이를 새로고침

 

‘퀴어문학’이라는 말은 이제 더는 낯설지 않다. 그러나 ‘퀴어’는 과연 퀴어하게 독해되어왔는가? 저간의 퀴어문학은 시스젠더 게이 남성들의 이야기로 대표되는 흐름 속에 있다. 그간의 문학사에서 찾아볼 수 없던 ‘퀴어한 퀴어’들이 찬연하게 빛나는 시절에 비평은 왜 그들의 소설만을 퀴어적인 것으로 호명하는가? 퀴어와 남성의 교차는 ‘남성인 퀴어’로 읽으면서 퀴어와 여성의 교차는 ‘퀴어한 여성’으로 읽는다. 가령 게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은 남성의 이야기이기 전에 먼저 동성애자의 이야기로 읽히지만, 레즈비언 소설은 여성의 이야기로만 읽히는 경향을 보인다. 여성 주체의 퀴어한 섹슈얼리티가 여성이라는 우선적 개념에 하위 종속되며 흐려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읽기는 퀴어를 시스젠더 남성 게이로, 페미니즘을 이성애 여성으로 축소 젠더화하여 호명하는 방식이다.

페미니즘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운동이 최대 다수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정체성을 집단의 대표 주체성으로 설정해왔다. 그러나 집단적 주체가 놓친 소수의 얼굴들은 대리보충되며 다시 등장한다. 페미니즘은 그 자체로 절대적인 성역이 아니라 오히려 그동안 성역화되어온 것들에 의문과 비판을 제기하는 힘이므로 페미니즘은 바로 그 자신에 의해 비판되고 갱신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그간 말해온 페미니즘과 퀴어는 무엇이었나 하는 이 성찰은 그 자체로 페미니즘적인 실천이다. 이제 비평이 퀴어와 페미니즘을 동시에 말할 때 한국문학의 이성애 중심 페미니즘은 새로고침된다. 비평은 가령 『82년생 김지영』이 주목한 ‘보편적 여성’의 삶의 구조가 소환하는 차이들—퀴어 여성들을 읽어내야 한다. 페미니즘과 퀴어 내부에서 발생하고 역동하는 차이에 대해 ‘퀴어한 시선’으로 읽는 독법이 필요한 때다.

이러한 차이들이 범람하는 2010년대의 문학장에서 여성의 주체성은 타자들에 의해 찢기고 회복되면서 새로운 얼굴을 가지게 되는 들뢰즈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퀴어는 본질론적 주체에서 벗어나려는 여성이 마주하는 새로운 타자이면서, 페미니즘이 구해내는 여성 주체성의 재귀적 정체성이다.

물론 여성에게 퀴어의 기표는 남성의 기표보다 훨씬 더 난해할 수 있다. 퀴어는 젠더 이분법의 바깥에서 이성애 중심주의 그 자체를 대타항으로 겨냥하기 때문이다. 퀴어와 페미니즘은 이 지점에서 아이러니하게 교차한다. 남성 주체가 여성을 타자화하는 시선에 맞서온 여성문학의 대항은 이성애 중심주의를 강화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따라서 그 도식 자체를 부수려는 퀴어는 이성애 여성에게 있어 그들의 주체성을 파괴할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타자인 것이다. 그러나 퀴어 여성은 남성적 욕망의 타자 위치에서 ‘이미’ 얼마간 벗어나 있는 존재들로 그들의 욕망과 삶의 방식은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유대와 연대의 현실태일 수 있다. 그러기에 페미니즘이 여성들 내부의 차이를 말하면서 퀴어 여성의 삶을 말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이제 문학이 당면한 문제는 그간 보지 못했거나 혹은 보고도 부러 투명하게 만들어버린 자신의 일부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이성애 여성으로 대표되어온 한국문학의 ‘여성’은 퀴어를 어떻게 독해할 것인가? 최은영의 「고백」1은 문학의 이러한 자의식을 소설적으로 형상화하며 레즈비언 여성을 마주하는 이성애 여성의 갈등을 드러낸다.

 

 

침묵은 고백의 음소거: 「고백」

 

고백은 음험한 행위다. 화자는 청자를 포박해 강제로 진실과 대면시킨다. 진실의 내용은 예측불허다. 너를 사랑한다는 말일 수도, 혹은 누군가를 죽였다는 말일 수도 있다. 그 내용이 무엇이건 간에 고백 이후의 현실은 결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고백이 터지기 직전의 순간은 언제나 두렵다. 「고백」에서 진희는 가장 아끼는 두 친구에게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하지만 그들의 혐오 발화로 인해 자살한다. 그러나 소설이 초점화하는 것은 진희의 비극이 아니라 남은 두 (이성애) 여성이 느끼는 가해자로서의 죄의식이다. 소설의 ‘고백’은 1인칭 화자 종은을 매개로 미주의 과거와 현재 두 층위에서 이중적으로 구성된다. 이때의 ‘고백’은 과거에 미주 자신이 진희에게 받은 고백(커밍아웃)과 현재의 자신이 종은에게 건네는 고해 두가지를 의미한다.

미주와 주나, 진희 세 사람이 이루는 관계는 겉으로는 안정적인 삼각형처럼 보이지만 약간의 불안과 함께 진동하고 있다. 미주는 주나와 진희의 관계를 보며 자신을 거기에 “딸린 부록”(192면)처럼 여긴다. ‘사이’에 있다는 그 소외감을 세 사람 모두가 느낀다는 사실을 미주는 알지 못한다. 그 저릿한 감각을 마음 한편에 간직하며 지내던 어느 날, 진희가 커밍아웃한다. 진희의 열여덟번째 생일이었다.(“난 여자를 좋아해.”/“난 레즈비언이야, 얘들아.” 197면) 주나는 역겹다며 구역질하는 시늉을 하고 미주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그의 말을 흘려듣는다. 이것이 진희 생전의 마지막 기억이다.

두 ‘고백’ 중 소설이 무게중심을 두는 것은 미주의 이야기다. 진희가 유서를 남기지 않았으므로 진실은 오직 미주와 주나의 몫이 되고 둘은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는 가해자의 굴레에 갇힌다. 미주는 “무해한”(196면) 진희가 왜 자기를 이토록 괴롭게 만들고 떠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진희는 늘 “네 마음이 편하다면 내가 불편해져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자신의 예민함을 숨기려고 했다.” 195면) 소설이 인간의 유한함과 신적인 초월을 말하면서 포용의 시선을 보내는 마지막까지 미주는 끝내 진희를 이해하지 못한다. 내게 무해하던 타자가 갑자기 유해하게 변한 상황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그러나 우정은 상호적인 가치다. 진희가 ‘무해한’ 사람을 자처하며 진실을 은폐할 때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196면)”한 행복을 누리던 미주는 진희에게 과연 ‘무해한 사람’이었을까? 타자는 주체가 그의 아늑한 세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거짓 자아를 전시했다. 문제는, 주체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미주는 진희가 소설을 읽을 때 중요하지 않은 인물들에 주목하는 사람, 요컨대 소수자성을 체현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진희가 커밍아웃하려던 직전의 순간에 “어떤 것이든 진희가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랐”(196면)던 것이다.

 

미주는 할 말을 찾지 못해 교복 치마를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레즈비언이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아주 멀리에 있을 거라 여겼었다. 미주는 진희가 분명 진희 자신에 대해 잘못 판단했으리라고 생각했다. 더 솔직히 말해서 진희는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되어서는 안 됐다.(198면)

 

진실을 알지만 미주는 그것을 감당할 용기가 없다. 미주의 침묵은 퀴어에 대해 사회 전반이 주입하는 혐오적인 편견(“그런 사람들”) 때문으로 진술되지만 주나와 진희의 관계에서 느끼는 소외감과 질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유가 무엇이든 진희가 레즈비언이어선 안 되는 이유는 진희가 계속해서 ‘무해한 사람’이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죽은 후에도 말이다. 미주가 진정으로 용서받기 위해서는 그가 진희에게 저질러왔던 이 무의식적 강요, 무해한 존재일 것에 대한 강요를 ‘고백’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신의 아픔만을 천착한다.

 

미주는 자신이 진희에게 버림받았다고 믿었다. 네가 이런 식으로 나에게 상처를 주다니. 이런 차가운 방식으로 네가 나를 버리다니, (…) 유서 한 줄도 없이, 쓰고 또 써도 채울 수 없는 공백을 주다니. 나에게 너의 유서를 쓰게 하는 벌을 주다니.(200면)

 

고백은 상대방을 나의 진실에 일방적으로 연루시키는 강제적 발화이면서 동시에 그를 나의 세계로 초대하는 일이기도 하다. 진희의 커밍아웃은 미주와 주나에게 자신의 가장 비밀스러운 조각을 내어주는 환대였을 것이다. 침묵은 어떤 경우에 기만이 되기 때문이다. 레즈비언이 자연스럽게 이성애 여성으로 간주되는 상황에 대해 스스로 어떤 해명도 하지 않는 것은 거짓을 강화하는 침묵이다. 진희는 셋의 우정을 기만하지 않기 위해 커밍아웃함으로써 그 침묵을 깨뜨린다.(“너흴 속이고 싶지 않았어.” 196면) 그러나 정작 고백을 받은 미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용기 내 입을 연 진희를 더 깊은 침묵 속으로 영원히 사라지게 만든다. 진실을 억압하는 침묵은 진희에 의해 찰나적으로 부서지지만 미주의 말 없음을 통해 다시, 더욱 강화된다.

진희의 ‘유해함’, 타자성에 대한 이해는 사건으로부터 일년 반이나 더 지나서야 겨우 시작되지만(“자기가 진희를 버렸다는 사실을 미주는 그제야 참담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몰라서 그런 짓을 했다는 말은 변명이 될 수 없었다. (…) 자신의 눈물이 미주는 역겨웠다.” 202면) 소설은 미주의 성찰을 상당히 요약적으로 제시하며 손쉽게 마무리된다. 이는 자신이 죽인 타자를 이해하고 애도하는 작업이라기보다 단지 겨우 사인을 규명해낸 단계에 불과하다. 미주가 셋의 관계 안에서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세심하고 길게 형상화한 전반부에 비해 한 단락으로 끝나버리는 이 ‘깔끔한’ 마무리는 매우 당혹스럽다.

한편,

  1.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문학동네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