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학문의 주체성과 오늘의 대학

 

 

좌담: 주체적이고 세계적인 학문은 가능한가

126-18

임형택

성균관대 한문교육학과 교수, 대동문화연구원 원장 htlim@yurim.skku.ac.kr

서경희

광주대 외국어학부 영문학 교수 khsuh@gwangju.ac.kr

신정완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경제학 교수 jeongwans@mail.skhu.ac.kr

백영서

연세대 사학과 교수, 본지 부주간, 사회 baik2385@yonsei.ac.kr

 

 

때: 2004년 10월 16일

곳: 한국프레스쎈터 20층 모란실

 

 

사회(백영서)  먼저 좌담을 위해 와주신 세 분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창작과비평』에서는 이번호 특집의 주제를 ‘학문의 주체성과 오늘의 대학’으로 잡고 좌담을 기획했습니다. 요즘 국내외 정세가 어수선하고 사회적 갈등도 심화되는 와중에 왜 이런 주제가 잡혔는지 의아해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희는 이 주제가 사회적인 관심사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번 특집과 이 좌담은 작년부터 본지에서 진행해온 연속특집 ‘21세기의 한반도 구상’의 맥락에서 한반도 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짜는 문제를 염두에 두고 기획한 것입니다. 오늘 좌담에서는 대학개혁에 촛점을 맞추되 대학의 제도적 개혁에 대한 논의는 많았으니까 그중에서도 주로 학문생산의 문제, 이른바 연구의 문제를 가지고 얘기를 해봤으면 합니다.각 학문분야의 금기랄까 차마 말 못했던 것까지도 터놓고 얘기하면서 대안을 찾는 진지한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먼저 이 주제에 대한 선생님들의 문제의식을 들려주시는 방편으로 학문생산 현장에서 느끼는 문제점을 얘기해주시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특히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이 좌담에 대학에 있는 분들만 참석했는데, 우리 사회는 대학의 학문생산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까 하는 점을 의식하면서 논의해주셨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대학개혁의 실태와 학문생산

 

白永瑞 전지구화된 새로운 삶의 조건에서는 예전보다 복잡한 과제가 부각되고 분과학문의 벽을 뛰어넘는 시도를 자꾸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를 위해 학제간 연구, 공동연구를 해야 하죠.

白永瑞
전지구화된 새로운 삶의 조건에서는 예전보다 복잡한 과제가 부각되고 분과학문의 벽을 뛰어넘는 시도를 자꾸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를 위해 학제간 연구, 공동연구를 해야 하죠.

임형택  ‘학문생산’하니까 학문도 물질적인 것처럼 생산하는가라는 생소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만 요즘 대학사회에서는 그야말로 학문생산에 교수들을 경쟁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어요. 그래서 교수들 대부분이 학문생산 실적을 올리기 위해, 실적 부진으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온갖 요령을 부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옆을 돌아볼 겨를도 없어 서로 어울리고 즐기는 자리도 되도록 피하게 되고, 당장 자기 논문과 관계가 될 것 같지 않으면 관심을 가지려고도 않지요. 이게 잘하는 짓인지, 이렇게 해서 과연 진정한 학문발전이 이루어질 것인지 대학사회에 평생을 몸담고 있는 저 자신도 솔직히 말해서 의문이 듭니다. 과연 그렇게 해서 생산된 학문이 어떤 기여를 하고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가에 대해서 자신있게 답변하기도 어렵지만, 무진 애를 써서 또 어려운 과정을 통과해서 논문이란 형식으로 발표를 하는데, 도대체 몇명이나 읽어주는지 문득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같은 전공자들도 별로 읽지 않는다니 일반 독자들은 이해도 되지 않을는지 모르지요. 논문이다 저서다 워낙 과다 생산이 되니까 일일이 다 챙겨서 읽기도 어렵고, 또 부실한 내용이어서 읽을 맛이 나지 않는 것도 많은데다가 제 논문 쓰기 바쁜데 남의 글 찾아 읽을 여유가 없는 것이 실상입니다. 그러니 학문이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라고 봐야겠지요. 학문이 외형적으로 이미 대량생산체제에 들어서서 문제점을 무한히 야기하고 있는데 대학개혁이 진행되는 현 싯점에서 학문의 제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할까, 학문의 내실을 어떻게 채워갈까 참으로 고민스럽습니다.‘21세기의 한반도 구상’이란 자체가 본디 학문의 고유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만 이 큰 과제를 위해서 학문의 제도를 점검하고 학문의 길을 반성하는 일은 실로 관건적이라 하겠습니다.

서경희  흔히들 우리나라 대학이 현실과 유리된 상아탑에 갇혀 있어서 국가와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제대로 양성하지 못하고 있고, 또 국제경쟁력 면에서 낙후되었다는 비판을 듣는데, 그런 비판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하지만 대학이 지향한 진리탐구와 학문추구라는 이상은 아무런 공론의 과정도 거치지 않고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대신 세계시장을 무대로 한 경쟁력있는 인재를 배출하기 위한 실용화 바람이 거세게 대학에 몰아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이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겠죠. 그런데 이같은 상황은 대학구조의 서열화로 인해 서울의 명문대학보다는 지방대학에서 훨씬 더 심각하다고 여겨집니다. 실제로 제가 지방대에 근무하면서 제일 곤혹스러운 일 중의 하나가 학생들 대부분이 기초적인 영어실력도 못 갖춘 상태인데다 기초적인 영어실력 가지고는 도저히 읽어낼 수 없는 영문학 텍스트를 가르쳐야 한다는 점이에요. 학생들은 대부분 실용영어를 배워 토익이나 토플 점수 올리는 데만 관심이 있지 영문학에는 흥미가 없어요. 또한 대학원이 없고 학부과정만 있는 대학에서 가르치다보니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의 연구와 교육 간의 괴리가 너무 커서 연구는 단지 제 개인적인 차원의 일일 뿐이고 교육현장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따로따로 진행될 가능성이 커요. 그러다보니까 연구의욕은 점점 꺾이게 되고, 또 지방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지적인 협동을 할 수 있는 학문공동체에서 멀어질 때 오는 위축감도 많이 느끼게 되지요. 그런데 대학개혁이 강제하는 교수업적평가를 의식하게 되면 또 연구실적을 일정량 내야 되니까 스스로 부실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논문을 안 낼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물론 학문생산의 제일 큰 책임은 연구자 개인에게 있는 것이지만 이런저런 외부적 조건들이 합쳐져서 전반적으로 학문생산을 부실하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 같습니다.

林熒澤 종래의 국학에 안주하지 말고 학문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합니다. 동아시아를 하나의 전체로 상호 관련하여 고찰해야 하고 항시 세계보편을 염두에 두어‘세계적 지평’에 올라서도록 힘써야 합니다.

林熒澤
종래의 국학에 안주하지 말고 학문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합니다. 동아시아를 하나의 전체로 상호 관련하여 고찰해야 하고 항시 세계보편을 염두에 두어‘세계적 지평’에 올라서도록 힘써야 합니다.

신정완  현재의 대학개혁은 정부가 주도하고 재계와 일부 언론이 지원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대학개혁의 큰 방향은 대학정원을 감축하는 총량적 차원의 구조조정, 대학교육 내용의 실용성 강화, 교수평가 강화 등을 통한 연구의 수월성(秀越性) 제고, 선택과 집중을 통한 전략적 대학지원 등인 것 같습니다. 반면에 교수단체 등에서는 이러한 방향의 대학개혁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면서 교육의 공공성 강화라는 모토 하에 대학의 소유지배구조 개선, 대학운영의 민주성과 투명성 제고 등을 강조해왔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대학설립이 크게 늘어난 데 비해 인구증가율이 감소하면서 자연스레 모집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들이 생겼으므로 어떠한 형태로든 총량적 차원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이고, 현재 대학의 성격이 취학연령 젊은이들 거의 모두가 들어가는 대중교육기관으로 변모한만큼 대학교육의 실용성 제고도 필요합니다. 또한 많은 사립대에서 투명하지 못한 경영과 재단이사회나 총장의 전횡 등의 문제도 확인된만큼 소유지배구조 및 운영방식의 민주화도 꼭 이루어져야 할 과제입니다. 이런 점에서 효율성을 강조하는 현재의 대학개혁의 방향과 대학운영의 민주성을 강조하는 요구가 결합될 수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교육부가 대학운영의 민주화 문제에 대해서는 소홀해왔기 때문에 교수 등 대학교육의 주체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 대학의 공공성 강화를 주장하는 측에서도 지금까지 우리 대학들이 교육 및 연구의 생산성 측면에서 낙후되어 있었다는 점과, 대학교육 내용의 실용성이나 연구의 수월성 제고를 위한 개혁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 합리적인 대학개혁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회  문제의식 혹은 현장의 경험을 말씀해달라고 했는데 벌써 우리가 다루어야 할 중요한 문제로 바로 들어갔습니다. 현재의 대학개혁이 학문생산과 관련해 과연 긍정적인가에 대해서 각자의 입장을 밝혀주시면서 지금 현장의 상황이 어떤지 간단히 소개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徐庚喜 오랫동안 학문생산에서 소외된 주변화된 타자로서 여성의 시각이 반영될 경우 기존의 학문대상과 연구방법, 가치 등을 새롭게 정의하는 다양한 대안적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고 봐요.

徐庚喜
오랫동안 학문생산에서 소외된 주변화된 타자로서 여성의 시각이 반영될 경우 기존의 학문대상과 연구방법, 가치 등을 새롭게 정의하는 다양한 대안적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고 봐요.

신정완  현재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대학개혁, 또 국제적 표준에 근접하려는 연구의 수월성 강화 정책은 최소기준을 마련해준 측면이 있어요. 그래서 그 기준에 미달한 대학이나 개인에게 자극을 주고 독려하는 측면은 있는데, 정부 주도의 평가에서는 기준이 획일화될 수밖에 없어요. 시비의 소지를 줄이려면 정량적 평가를 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낳는 부작용들이 있는 것 같아요. 논문 편수가 중요하다보니까 논문을 쪼개서 쓰는 관행이 생겨나고 논문의 질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고, 각 대학들은 생존을 위해 정부의 지원을 따내야 하기 때문에 급조된 프로젝트를 많이 하게 되고 비교적 유능한 교수들이 본인의 관심사와 무관하게 동원되는 문제 등이 있어요. 그리고 한국학술진흥재단(학진)의 등재지 평가는 대학에서 요구한 측면이 있다고 해요. 대학에서 교수임용이나 재임용과 관련해서 연구실적 평가기준이 필요한데 대학 구성원이 합의를 못 보기 때문에 결국 학진에 맡겨졌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대학 구성원들이 먼저 반성을 해야겠죠. 학진 등재지 정책이 전체적으로 어떤 효과를 냈는가를 생각해보면 긍정적인 것은 무엇보다도 논문 편수를 늘린 점 같아요. 그런데 학문발전, 특히 주체적 학문발전은 새로운 영역, 새로운 방법론을 모험적으로 추구하는 연구자와 그 연구성과가 많아져야 가능한데, 기존의 대규모 학회에서 발간하는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이 유리한 상황이 새로운 시도들을 차단해버리는 역효과가 크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또 많은 학회들이 등재지, 또는 등재지 후보로 평가받기 위해 외형 불리기에 치중한 측면이 있어요.

辛貞玩 주체적 학문에서 민족적 주체성 문제가 중요한데 우리는 이미 굉장히 서구화된 주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아요. 서양과는 다른 근대화 과정의 특수성을 제대로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辛貞玩
주체적 학문에서 민족적 주체성 문제가 중요한데 우리는 이미 굉장히 서구화된 주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아요. 서양과는 다른 근대화 과정의 특수성을 제대로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임형택  우선 학문생산은 대학개혁 문제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는데 지금 대학구조개혁의 당위성 내지 필요성에 대해서 부인할 사람은 없다고 봐요. 지난 세기말 이래 진행된 세계화의 추세나 정보기술의 발전 속도, 그리고 한국사회 내의 인구감소 등의 문제를 고려할 때 20세기적인 대학제도를 가지고는 21세기의 시대에 대응해갈 수 없다는 점에 대체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싶어요. 문제는 어떻게 바꿔나갈까인데, 이 대목에서 마냥 허둥대고 실착을 거듭하는 듯 보여 안타깝습니다. 학부제 문제만 해도 기존의 분과학문 체제로는 안되겠다,적절한 방도를 찾아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과연 소기의 성과와 실효를 거두었느냐는 데는 긍정적인 답이 안 나오거든요. 현행 학부제는 부실화해서 표류하고,오히려 다시 과거로 환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 아닌가요.이와 관련해서 저는 두 가지 반성할 점을 들겠습니다. 하나는 지난 80년대 전후에 실험대학이란 제도를 당시 문교부가 대학들에 밀어붙였는데 지금 학부제와 내용·형식이 거의 비슷했습니다. 그러다가 실패하여 유야무야 철회해버리고 말았지요. 그럼에도 유사한 제도를 또다시 들고 나오면서 왜 그때 실패했는가에 대한 조사·분석을 거쳤다는 말을 전혀 듣지 못했어요. 역사는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으면 그 실패를 반복한다는 교훈이 새삼 절실해집니다. 그리고 일을 추진하는 방식이 문젭니다. 학부제를 포함해서 대학개혁 전반을 정부당국이 표면적으로는 대학의 자율에 맡긴다면서도 돈으로 유인하는 술수를 쓰고 있지요. 그런 한편으로 평가라는 것을 부단히 실시해서 의도하는 틀 속으로 대학들이 끌려들어가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합니다. 말하자면 지원이란 ‘당근’과 평가란 ‘채찍’을 동시에 사용하는 셈입니다. 이 방식은 묘방이어서 표면적으로는 효과를 보고 있다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실상은 그 제도의 부정적인 면이 확대되고 역효과를 내게 됩니다. 대학당국은 당근에 끌려서 부지런히 좇아가는데 교수들의 동의와 합의는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 있지요. 지금 학부제의 부실화는 기실 편의주의 때문에 자초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대학개혁도, 학문발전책도 첫째로 실사구시에 입각해서 원칙과 방향을 제시하고 적합한 방법론을 고안해야 하며, 그러면서도 대학구성원 다수의 자율성·창발성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개혁이란 개혁대상이기도 한 성원의 합의로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의 공감대 없이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덧붙여 한마디 더 하지요. 오늘의 학문생산은 제도적 과정에 속박되어 벗어날 수 없는 실태인데, 동시에 그것은 인간 개체의 두뇌에서 창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지요. 그러므로 제도가 인간에 내재한 창조적 역량을 어떻게 활발하게 만들지 먼저 사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서경희  대학개혁이나 학문생산을 얘기할 때 대학범주에 포괄되는 것은 서열구조에서 중상(中上)에 속하는 대학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제가 근무하는 지방대학은 연구나 학문생산을 논하기 이전에 존폐의 기로에 몰려 있기 때문에 사실 학문의 위기를 논하는 것조차도 호사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요즘 대부분의 지방대 교수들이 가장 절박하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일은 신입생 충원을 위한 고교 홍보출장이라든지 재학생의 등록률을 높이고 자퇴나 타 대학으로의 편입 등의 이유로 재학생 수가 감소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각종 학생지도, 그리고 졸업생의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활동 등이거든요. 그런데도 교수업적평가 항목을 보면 다른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연구, 교육, 사회봉사 각각을 잘해야 승진이나 재임용이 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상위권이든 하위권 대학이든 공통적으로 지닌 문제는 있겠지만 대학간의 서열구조를 고려해 개혁이 논의됐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대학간 서열체제를 무너뜨리는 일과 연관하여 개혁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에 있어서 선택과 집중이라는 논리는 사실 서열구조의 하단부에 있는 대학을 경쟁에서 탈락시키고 이들이 되도록 빨리 고사되기를 바라는 것인 듯해요. 그래서 우리가 학문생산의 문제, 연구의 문제, 교육의 문제를 얘기할 때 때로는 대학의 서열화된 구조를 염두에 둘 필요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임형택  사실 서울대의 모델이 전국적으로 모든 대학들에 적용됐거든요. 그런 획일화의 문제점은 굳이 지적하지 않더라도 눈앞에 뚜렷이 드러나고 있지요. 지금 대학개혁에서 대학의 여러 모델을 수준과 지역적인 조건 등 다른 여건들을 고려해서 개발, 발전시키는 일이 중요합니다. 가령 학자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대학원중심대학은 소수로 두고, 중하위권 대학, 그리고 지방의 군소대학, 특수기술학교 등 좀더 다양하고 실정에 맞는 대학의 형식을 고안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학문의 심각한 대외의존성

 

사회  저는 서열구조에서 이른바 상위권에 속하는 대학도 구조적으로는 다 똑같은 조건에 처해 있다고 봐요. 연세대만 해도 최근 대학개혁을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위기를 겪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학문생산의 관점에서 보면 대학원이 잘되어야 학문의 후속세대를 양성할 수 있는데 우선 제가 지도하는 학생을 보면 본교 대학원 석사과정까지 진학했다가 상당수가 외국유학을 가요. 제 분야는 중국사이고 넓은 의미로는 동아시아사라고 할 수 있는데 이전 같으면 학생들이 유학을 안 갔어요. 그런데 요즘은 거의 중국이나 미국에 유학을 갔다오는데 그러면 교수임용도 잘되거든요. 상위권 대학조차도 대학 내에서의 학문생산 전망은 밝지가 않아요. 서울대나 고려대도 제 전공분야는 비슷한 조건에 처해 있다고 봐요. 한국의 모든 대학이 전세계의 등급상으로는 중위권 이하겠죠. 그러면서 전부 세계 중심의 상위권 대학으로 진학하는 대외종속성이 심화된다는 점에서는 같은 위기를 겪고 있어요. 다들 유학을 보내기 위한 학부과정에 그치는 것이죠. 사실 이것은 한국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대만도 비슷하게 겪는 전세계적인 문제이고, 이른바 국제경쟁력이 주는 압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그러면 대외의존성에 대한 실감이 어떤지 얘기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 부담을 많이 느끼는 분야가 경제학과 영문학일 것 같은데요.

신정완  경제학은 사회과학의 다른 분야에 비해 연구방법의 보편주의적 성격이 매우 강합니다. 대다수 대학에서 가르치는 경제학 패러다임은 주류경제학이에요. 이념적으로 시장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방법론적 개인주의에 기초한 신고전학파 경제학을 중심에 두면서 케인즈(Keynes) 경제학이 결합된 형태가 주류경제학인데, 그 반대편에 맑스경제학이 있죠. 그런데 둘 다 보편주의적인 학문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치학이나 사회학은 체계성이 좀 낮다 하더라도 학문 패러다임이 다양한데 경제학은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경제학자는 사회학자나 정치학자에 비해 대체로 더 근본주의적입니다. 시장지상주의자이거나 아주 원칙적인 반자본주의 성향이 강하죠. 일본 경제학이 독일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일제시대에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로서는 맑스주의와 역사학파의 영향이 강했어요. 경제학의 역사에서 역사학파는 거의 유일하게 특수주의적 경향이 강한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그 전통이 차단되죠. 지금은 케인즈 경제학과 신고전파 경제학을 미국에서 공부한 학자들이 대거 충원되면서 국내 대학교수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몇몇 큰 대학에서만 맑스주의 경제학을 전공한 교수가 있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경제학의 본산지인 영국에서조차 최근에는 경제학 교수를 하려면 미국 유학을 가야 한다고 할 정도로 미국 집중이 강화되고 있고, 경제학 이론 생산의 90% 이상을 미국이 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예요. 그것으로라도 한국경제를 잘 설명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IMF 경제위기를 겪을 때 IMF가 권고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의 부작용을 지적한 학자들은 주류경제학자 중에서도 주로 미국 경제학자들이었고 국내 학자들은 많지 않았어요. 정서적인 반발이 있었지만 그것을 이론화할 능력이 없었고, 그래서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주장하는 쪽이나 그것의 부작용을 비판하고 다른 노선을 제시하는 쪽이나 모두 미국학자이고 우리는 그것을 소개하는 식의 논의구도가 이루어졌는데 이 패턴이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많아요. 그래서 문제의식의 주체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문제의식 자체를 배워오는 일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입니다. 국내에서 공부한 사람으로서 갖는 편견일 수도 있지만, 미국에서 유학한 교수들의 상당수는 마치 손님이 남의 사회를 바라보듯이 우리 사회나 대학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아요. 자기 대학과 사회를 삶의 중심지로 보기보다는 일종의 부임지로 보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죠. 물론 이 분들이 학부과정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다가 미국 유학에서 본격적으로 학문을 연마했기 때문에 그런 태도를 갖게 되는 측면이 있겠죠. 그런데 국내 대학교육의 부실 문제를 국내 대학에 남아서 발언을 통해 해결한 것(voice option)이 아니라 국내 대학으로부터 탈출하는 선택(exit option), 더 정확하게는 탈출했다가 학위를 받고 나서 귀환하는 선택을 했죠. 그래서 결과적으로 성공했고요. 따라서 제자들, 특히 똑똑한 제자들에게 탈출하는 선택을 권유하죠. 여기에 오래 있어봤자 별 비전이 없으니 나갔다가 오라는 식이죠.

사회  그러면 대학원 실태는 어떻습니까? 석·박사 과정이 존재하잖아요.

신정완  제가 학부 82학번이니까 오래전 일인데 그때 느낀 것은 석·박사과정이 사실 학부보다 부실하다는 겁니다. 학부과정은 교수가 책이라도 한권 떼주는데 대학원 교육은 대개 교재를 몇개 골라서 학생들에게 발표시키고 교수는 몇가지 코멘트해주는 식으로 진행된단 말예요. 박사과정에 들어가면 더 한심한 것이 대개는 석사과정 학생들과 수업을 같이 하는데 석사과정에서 배운 것과 대동소이한 내용입니다. 그러면서도 이수학점 수는 굉장히 많아요. 밀도높은 교육을 제공할 수 없으면 차라리 이수학점 수를 줄여서 논문에 집중하게 해주면 좋겠는데 취직도 못하고 논문에 집중도 못하게 하는 그런 구조입니다. 지금 미국대학의 경우 코스워크(coursework)가 굉장히 강하지 않습니까? 유럽의 경우는 코스워크가 약하고 논문지도의 비중이 크다고 하는데 우리 대학은 코스워크 비중도 크고 논문도 까다롭게 하면서 실질적인 지도는 잘 안되고 있는 것이죠.

사회  그 얘기는 80년대적인 것이고, 지금도 그렇다는 얘기입니까?

신정완  서울대 경제학부 후배들 얘기를 들어보면 젊은 교수들이 부임하면서 교육의 밀도는 높아졌다고 해요. 그러나 대학원 다니다가 유학 가는 학생 수가 늘어나면서 박사과정까지 머물러 있는 학생의 비중은 줄어들고 있고, 또 대체로 타대학이나 타전공 출신들이 박사과정에 많이 들어오면서 교수들이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을 진정한 제자로 생각하지 않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