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손택수 孫宅洙

시인. 시집 『호랑이 발자국』 『목련 전차』 『나무의 수사학』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등이 있음. ststo700@hanmail.net

 

정주아 鄭珠娥

문학평론가. 저서로 『서북문학과 로컬리티』 등이 있음. jjua@kangwon.ac.kr

 

김 언 金 言

시인. 시집 『숨쉬는 무덤』 『거인』 『소설을 쓰자』 『모두가 움직인다』 등이 있음. kimun7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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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손택수, 정주아, 김언.  Ⓒ 신나라

 

 

손택수 『창작과비평』 2017년 봄호 문학초점 좌담에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정주아 평론가가 저와 함께 봄호와 여름호 좌담을 진행하실 예정인데요, 이번 초대손님으로는 김언 시인을 모셨습니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두분 인사를 듣고 싶습니다.

 

정주아 반갑습니다. 모두 비슷하시겠지만, 날마다 쏟아지는 시국 관련 뉴스를 따라잡느라 무언가를 읽고 쓰기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요, 오늘은 두분 말씀에 집중해보겠습니다.

 

김언 오랜만에 듬뿍 한국문학을 읽어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창작하는 입장이든 창작에 대해 평하는 입장이든 일단은 읽는 시간이 필요한데요, 생활에 쫓겨서 독서가 부족하던 와중에 모처럼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할 수 있는 자리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손택수 붓글씨를 쓸 때 글씨 획이 불거지면 그다음 획으로 불거진 획을 커버해야 한다고 합니다. 행과 행의 조화를 그렇게 모색해 완성된 한장의 서도(書圖)처럼 서로 기대고 도와서 이뤄내는 높은 조화의 공간이 이 좌담을 통해 만들어지길 희망합니다.

 

 

기준영 『이상한 정열』(창비)

 

175_255정주아 기준영(奇俊英)의 두번째 소설집 『이상한 정열』부터 시작해볼까요. 2013년에 나온 첫 소설집 『연애소설』(문학동네)부터 이 작가의 주요 과제는 끈끈한 관계들, 가족이나 연인 같은 관계에 따르는 ‘앎’의 환상을 해체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시종일관 작가는 타인의 삶을 온전하게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전반적으로는 시니컬하고 냉소적인 메시지랄 수 있겠는데, 그런 냉소가 오히려 독자들에게는 따뜻한 위로로 전달된다는 것이 기준영 소설의 매력입니다. 감정 앞에 담담한 문장이 도리어 삶에 대한 사색의 여백을 열어준다고 할까요. 이번 소설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손택수 삶이 설명이나 이해의 영역으로만 개념화돼 있다면 이상할 것이 별로 없을지도 모릅니다. 개념화되지 않고 설명되지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영토들에 대한 탐색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시적이라고 느꼈습니다. 폴 비릴리오(Paul Virilio)가 의식의 흐름이 끊어짐과 동시에 시간의 선형적 흐름이 깨진, 그런 기억의 부재 상태를 피크노렙시(pyknolepsy)라는 말로 설명하지 않습니까. 아직까지 불가사의한 병으로 남아 있는 간질 현상에서 나온 개념인데, 지각되지 않는 일상 속의 미세한 경련과 발작까지 아우르지요. 비릴리오에 따르면 우리는 그런 무의식적 지향을 통해서 다른 시간대를 경험하게 되죠. 이 소설집에서 피크노렙시는 주로 공연장이나 극장 같은 공간 혹은 여행 모티브로 표출됩니다. 가령 「불안과 열망」에는 여행지에서 안네조피 무터의 연주회 정보가 나오고요, 「여행자들」에는 여행지와 영화가, 「조이」에는 여행과 극장이 나옵니다. 「조이」에서는 “자매는 마치 눈 내리는 밤을 배경으로 한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그 외침과 동시에 우뚝 멈춰 섰다. 세상의 시간이 마법에라도 걸린 듯 일시에 정지한 것처럼 느껴졌다”(222면)처럼 문장화되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일상과 비일상 사이의 경련과 발작은 「이상한 정열」의 열병이나 「여행자들」에 나오는 기침 같은 신체적 징후와도 연결돼 있습니다. 이런 설정들이 모성 결핍이나 모성의 부재와 관련있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이런 도식을 「4번 게이트」에 나오는 한 문장으로 갈무리해봤습니다. “정돈해놓은 것들, 깨끗이 닦아놓은 것들 사이로 몸을 웅크리고 데굴데굴 굴러보았다. 내 몸이 그렇게 구체적으로 어딘가 닿았다 떨어졌다 하는 느낌에 집중했다.”(85면) 결국 정돈된 개념, 확고부동하게 정돈된 일상의 시공간대에서 생겨나는 ‘이상한 정열’로서의 피크노렙시는 자기 실존에 대한 감각이면서 동시에 부재하는 모성과 점점 희박해져가는 타자에 대한 지향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해하게 됩니다.

 

김 언

김 언

김언 소설 평론을 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웃음) 저는 오늘 좌담에서 다룰 작품들을 제목 중심으로 먼저 봤는데, ‘이상한 정열’을 찾아보니 동명의 다른 소설과 영화가 있더군요. 제목은 같지만 기준영의 소설은 해석이 달라요. 다른 작품들이 ‘이상한’에 방점을 찍는다면 기준영의 것은 ‘정열’에 더 무게를 둔달까요. 한없이 이상하지만 결국에는 이것 때문에 살고 있는 정열. 각 단편의 줄거리는 한 문장으로 요약될 정도로 단순해요. 단순한 줄거리를 복잡미묘한 심리묘사로 채우고 있는데요, 그러다보니 섬세한 시선과 언어가 필연적으로 들어가지요. 줄거리만 놓고 보자면, 가령 「불안과 열망」은 결혼을 앞둔 여자의 어떤 복잡다단한 심경과 그에 따른 선택이 될 것이고,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는 서른살 가까이 어린 여자의 어떤 면에 낚이듯이 걸려든 남자의 어떤 심경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이라는 말입니다. 이 ‘어떤’의 여러 국면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짚어가면서 풀어내는 시선과 언어가 이 작가의 독특한 지점을 이룹니다. 「이상한 정열」은 상대적으로 다채로운 사건이 전개됨에도 역시나 이도 저도 아닌 심리 상태, 로맨스도 아니고 불륜도 아닌 안개 같은 심리 상태를 동반합니다. 감정상으로 일종의 점이지대라고 할까요. 그러고 보면 이번 소설집에선 불안과 열망, 이상과 정열, 친애와 정념 같은 상이한 감정들이 짝을 이루면서 양극단에 서는 걸 자주 볼 수 있는데, 단순히 극단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들어차 있는 끝없는 안개 같은 심리가 상당 부분을 차지해요. 어쩌면 극단의 짝을 이루는 감정들이 단순히 대립의 차원을 넘어 은밀하게 이어지거나 어울리는 것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가령 정열이 있기 때문에 이상한 지점이 생기고, 이상하기 때문에 정열이 더 도드라지는 식으로요.

 

정주아 감정이나 심리를 섬세하게 다루는 데 이 작가의 장기가 있다는 것은 분명해요. 그런데 주요 인물들의 심리를 따라가다보면, 감정의 증폭이나 절제를 좌우하는 중요한 전제를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작중 구절로 말하자면 “노력의 대답이 아닌 시간”(77면)에 대한 의식이라고 할까요, 의붓오빠를 짝사랑하는 여주인공을 등장시킨 「4번 게이트」에 나옵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노력만큼의 대답, 보상을 보장받을 수 없는 시간이 삶이라는 것, 즉 관계는 등가교환처럼 성립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겠지요. 이 예측 불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타인의 영역이겠고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든 부부, 연인의 관계든 이렇게 겉보기에는 견고하지만 실은 막막한 시간을 견디는 것이 우리 삶의 대부분이라 해도 좋을 듯합니다. 이런 막막함을 힘겹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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