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강영숙 姜英淑

1967년 강원 춘천 출생.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흔들리다』 『날마다 축제』 『아령 하는 밤』 『회색문헌』, 장편소설 『리나』 『라이팅 클럽』 등이 있음. grolites@gmail.com

 

 

 

두고 온 것

 

 

민수는 차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운전석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패딩 파카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은 채 호텔 정문 앞으로 걸어가는 지연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귀마개가 달린 모자를 쓰고 부츠를 신은 채 호텔로 걸어가는 지연의 뒷모습은 모처럼 가볍고 평화로워 보였다. 빨리 와봐. 지연이 손짓했고 민수는 차에서 나가 양발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체에 잔뜩 힘을 준 채 보폭을 조절하며 걸었다. 몇발짝 가지 않아 지연이 다시 몸을 돌려 민수를 보며 말했다. 여기 진짜 우리가 왔던 호텔 맞네! 민수는 의심할 여지 없이 여기가 맞는다고 고개를 여러번 끄덕이며 웃었다.

차 밖으로 나온 민수는 무심코 계곡 위쪽을 보았다. 흰 겨울빛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무더기로, 허공 아래를 향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민수는 또 한번, 흰빛을 뚫고 허공을 밟고 이쪽으로 걸어오는 지연을 본 것만 같았다. 민수는 지연의 동그란 어깨를 잡았고, 지연은 민수의 귀에 입술을 대고 무슨 말인가를 속삭이며 목덜미로 감겨들었다. 지금까지 겨우 참고 꼭꼭 뭉쳐두었던 것들이 계곡의 겨울빛에 녹아, 눈앞에서 다 흩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민수는 난간에 몸을 기댄 채 정신을 차리려는 듯 머리를 흔들어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착시였고 지연은 지금 여기에 민수와 함께 있지 않았다.

차에서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민수는 긴장한 표정으로 차 주변을 한바퀴 돌았다. 트렁크 문을 열고 바퀴를 닦을 걸레를 꺼내 앞바퀴 쪽으로 갔다. 바닥에 밀착한 타이어에 묻은 피가 단단하게 언 길바닥으로 스미는 중이었다. 걸레도 검고 타이어도 검어, 정확히 어느 부분에 피가 묻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민수는 길바닥의 눈 속으로 점차 피가 스미는 것을 묘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호텔로 오는 오르막길에서 민수는 뭔가를 치고는 잠깐 멈췄다가 다시 출발했다. 민수는 차도에 죽은 동물이 그대로 버려져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사고가 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자동차 옆면과 앞창에까지 피가 튀었고 민수는 그것을 보고 놀라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자동차가 미끄러질 것 같아서 민수는 차에서 내려 뭘 치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H호텔은 보수공사를 하다가 중단했다. 자연경관이 뛰어난 북한산 자락에 연해 있어 색다른 분위기를 자랑하던 호텔은 빛이 바랜 아이보리 색 천막을 건물 외관에 뒤집어쓴 모양새로 가건물처럼 방치되어 있었다. 몇개월 전 그때처럼 호텔 정문은 외부인 출입금지라고 큼지막하게 쓴 안내 표지판을 단 채, 녹이 슨 두꺼운 체인을 친친 감고 있었다. 철문 너머의 경사가 있는 호텔 진입로도 길 양편에 쌓아놓은 원목 자재들과 철근들로 봉쇄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정문 왼편의 경비초소에는 사람이 있었다. 민수는 아크릴 외벽을 톡톡 두드렸다. 경비는 마스크를 쓴 채 고개도 내밀지 않고 못 들어간다며 손부터 내저었다. 민수가 한번 더 창을 두드리자 경비가 네모난 창을 위로 밀고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이에요? 민수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막 호텔 문 앞에서 크게 회전해 정차하려는 마을버스를 돌아봤다. 냉기 섞인 바람이 흙먼지를 일으켰다. 좀 들어가도 되죠? 민수가 따지듯 말한 순간 캡슐처럼 단단해 보이던 초소 문이 열리고 경비가 밖으로 뛰쳐나왔다. 몸이 아주 작은 노인이었다. 호텔 안 해요. 순간 민수는 흥분해서 어깨에 멘 가방을 한쪽 허벅지 위에 올리고 호텔 위탁운영업체에서 받은 공문을 꺼내 경비에게 내밀었다.

몇개월 전에 왔을 때도 경비는 씨도 안 먹힌다는 듯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위탁업체의 명함만 내밀고는 초소 문을 닫아버렸다. 여기에다가 공문을 보내봐요. 그러면 열어줄지도 모르지. 민수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틈틈이 동료들 눈치를 보며 위탁운영업체에 보낼 공문을 썼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호텔 방문이 이루어질까. 또 방문이 이루어진다 한들 뭘 할 수 있을까. 민수는 밤마다 먼지 속을 헤집는 기분이었다.

공문은 멋지게 쓸 수는 없었고 솔직하게 쓰는 쪽을 택했다. 와이프가 아프다. 연애할 때 갔던 H호텔에 다시 가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가지 못했다. 귀사가 위탁받아 관리하는 H호텔이 보수공사 중이라고 들었는데, 그렇더라도 한번 가보고 싶다. 호텔이 없어진 것이 아니어서 나한텐 정말 다행이다. 객실 사진을 몇장 찍을 수 있으면 좋겠다. 방문을 허락해준다면 평생 감사함을 잊지 않겠다. 죽은 목숨 살리는 셈 치고 따위의 표현까지는 쓸 수 없었다. 무슨 말을 적어도 감상적이고 유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민수는 우체국에 가 등기우편으로 공문을 발송하고는 다이어리에 영수증을 끼워두었다.

얼마 전 민수는 지연을 신경정신과 병동에 입원시켰다. 이번이 두번째였다. 첫 입원 후 집에서 쉬는 동안 지연은 병원에서 처방한 약을 하나도 먹지 않고 변기에 버렸다. 민수는 지연이 살려고 그런다고 생각해 오히려 위로했고 약을 먹지 말고 그냥 버텨보자고 말했다. 약을 먹으면 계속 잤고 약을 먹지 않으면 들떠 있었다. 민수는 약을 먹었을 때의 지연이 더 참기 어려웠다. 약을 먹으면 행동이 몹시 굼뜨고 반응이 느리고 말할 수 없이 느긋해졌다. 깊은 밤 지연이 잠들었을 때 민수는 어떤 증상이 일어나나 궁금해 지연이 복용하는 약을 먹어보았다. 너무 적은 양을 먹어서인지 민수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지연은 아직 덜 망가졌고, 여러모로 괜찮은 상태였는지도 몰랐다.

지연은 길을 가다 넘어진 게 아니었다. 피를 지혈하고 머리를 꿰매면 낫는 것도 아니었다. 민수는 결코 사용하고 싶지 않은 단어지만 지연이 미쳤고, 약물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민수는 4주간의 격리병동 입원 후에 지연이 다시 집으로 돌아올 것이고, 그러고 나면 또 아무 일도 없는 일상이 계속되리라고 믿는 것만이 자신이 할 일이라고 여기며 혼자서 시간을 보냈다.

멀쩡하게 회사에 잘 다니던 지연이 이상해진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눈앞에 흰개미 같은 것이 떠다닌다고 호소했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누군가 칼을 들고 와 갑자기 자신을 찌를 거라며 움켜쥔 손을 놓지 않고 집에 가자고 졸랐다. 한밤중에 누군가 자신의 이메일 계정을 해킹하고 있다며 머리를 질끈 묶고 밤새 눈을 부릅뜨고 컴퓨터 화면을 노려보던 때는 그래도 괜찮았다. 그 훨씬 전, 아파트 단지에서 담배를 피우는 고등학생들을 붙들고 서서 흡연이 사람한테 얼마나 나쁜지 아느냐며, 함께 기도하자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민수는 그냥 웃어넘겼다. 그런 일들이 혹시 초기 증세였다면, 그걸 몰라본 게 자신의 죄라면 받아들일 수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