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동아시아의 변화, 한국사회의 대응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과 역사문제

 

 

와다 하루끼 和田春樹

일본 토오꾜오대학 명예교수. 많은 저서 중 『한국전쟁』 『역사로서의 사회주의』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 신지역주의 선언』 등이 국내에 소개된 바 있음. 원제 「東北アジア共同の家と歷史問題」. fwjg0575@nifty.com

ⓒ 和田春樹 2005 / 한국어판 ⓒ (주)창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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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을 맞이해 동북아시아에서는 돌연 지역주의 구상이 중요한 논의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에서는 ‘동아시아 공동체’에 관한 논의가 한창 진행중이다.

졸저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 신지역주의 선언(東北アジア共同の家:新地域主義宣言)』(平凡社)이 토오꾜오(東京)에서 출판된 것은 2003년 8월이지만, 일본에서의 반응은 극히 미약했다. 신문사나 통신사 가운데서 서평으로 소개한 것은 쿄오도오(共同)통신사뿐이었다. 한국어 번역이 나온 2004년 6월, 서울의 각 신문사가 경쟁하며 서평을 실어준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작년 11월에는 전 외무성 과장으로 OECD 사무차관을 역임한 타니구찌 마꼬또(谷口誠) 씨가 이와나미(岩波) 신서로 『동아시아 공동체: 경제통합의 향방과 일본(東アジア共同體:經濟統合のゆくえと日本)』이라는 책을 냈다. 좀 시야가 좁은 책이라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 책의 출판은 시대의 변화를 알리는 것이었다. 2005년 연두에는 신문지상에서 ‘동아시아 공동체’라는 말이 자주 등장했다. 아사히(朝日)신문 새해 벽두의 사설은 ‘동아시아 정상회담’이 열리는 올해를 ‘동아시아 공동체 원년’이라 부르는 목소리가 있다고 소개했다.

‘동아시아 공동체’라고 일컫는 것이 주장된 것은 2001년 11월 ASEAN+3, 즉 동남아시아 국가연합, 중국·일본·한국의 정상회담에서 위임받은 연구그룹이 「동아시아 공동체를 향하여: 평화·번영·진보의 지역」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한 것이 최초였다.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 “우리들 동아시아의 민중(the people of East Asia)은 지역 안 모든 국민의 전면적인 발전에 기초를 두고 평화·번영·진보의 동아시아 공동체(East Asian community)를 창조할 것을 희구한다.”

꿈같이 여겨졌던 이 제안이 급속히 동남아시아 국가 정상들에게 받아들여져갔다. 일본의 코이즈미(小泉) 수상은 2002년 1월 싱가포르에서 일본과 아세안의 협력을 기초로 ‘함께 걸으며 함께 나아가는 커뮤니티’를 구축할 것을 주장하고, ASEAN+3에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를 포함하는 진일보한 제안을 했으나, 그다지 지지받을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한편, 이제까지 지역협력에 소극적이던 중국이 적극적으로 변하면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지지했고, 이에 위기감을 느낀 일본 외무성은 2003년 12월 토오꾜오에서 일본·아세안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새천년에 있어서 약동적이고 영속적인 일본과 아세안의 파트너십을 위한 토오꾜오 선언’을 내놓았다. 일본은 아세안 국가들과 더불어 ‘동아시아 지역의 창조’에 공헌하고, ‘동아시아 공동체를 위한 동아시아 협력의 심화’를 도모할 것이라고 정식으로 약속했다. 구체적으로는 ASEAN+3의 프로쎄스(process)가 ‘중요한 경로라는 인식’을 전제로, 이 프로쎄스 위에 “보편적인 규칙과 원칙을 존중하면서 외향적으로 풍부한 창조성과 활력이 넘치고, 상호이해와 아시아의 전통과 가치를 이해하는 공통의 정신을 지닌 동아시아 공동체 구축을 추구한다”고 하였다. ASEAN+3의 중요성과 ‘아시아의 전통과 가치’를 강조한 점에서 아세안 국가들이 지향하는 바에 부합한 ‘동아시아 공동체’를 표명했던 것이다. ‘동아시아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국가의 중대사를 국민에게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 결정한다는 것은 놀라운 이야기지만, 일본정부는 중국을 주시하며 아세안 국가들의 움직임을 뒤쫓기 위해서 그만큼 필사적인 듯하다.

이보다 앞서 2003년 9월 중국에서 ‘동아시아 싱크탱크 네트워크’(NEAT) 창설을 위한 회의가 개최되어, 그 사무국이 중국사회과학원에 설치되었다. 이 움직임에 크게 당황한 것은 일본 싱크탱크의 대표로 뻬이징(北京)회의에 참석했던 국제포럼 이사장 이또오 켄이찌(伊藤憲一)씨였다. 이또오씨의 주도로 정부의 외무성과 협의하여 2004년 5월 18일에 민관합동의 일본 동아시아공동체평의회가 출범했다. 회장에는 나까소네(仲曾根)전 수상이 취임했고 의장은 이또오씨가 맡았다. 일본국제포럼, 일본국제문제연구소, 평화안전보장연구소, 종합연구개발기구(NIRA), 환(環)일본해경제연구소 등의 싱크탱크 대표, 토오꾜오대학 교수 타나까 아끼히꼬(田中明彦), 정책연구대학원 교수 아오끼 타모쯔(靑木保), 경제산업연구소장 요시또미 마사루(吉富勝)씨 등 식자층과 기업 대표 70여명 정도가 모였다. 2005년 봄에는 타나까 아끼히꼬와 아오끼 타모쯔를 각각 주사(主査)와 부주사로 한 태스크포스(task-force)가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의 현황·배경과 일본의 국가전략’이라는 보고서를 제작한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이상한 점은 아사히신문이 이에 관해 전혀 보도하지 않았고, 요미우리(讀賣)신문은 겨우 11줄의 작은 기사로 처리했으며, 산께이(産經)신문만이 아쉬우나마 그런대로 보도를 했다는 것이다.

외무성에선 타나까 히또시(田中均) 심의관이 이끄는 아시아지역정책과가 평의회에 참가했다. 이 평의회의 제1회 정책본회의가 6월 24일에 외무성에서 개최되어 타나까씨가 보고했다. 그는 동아시아 공동체의 필요성을 세 가지로 나누어 지적했다. 첫번째는 ‘일본의 중장기적인 국익이 기대된다’는 것, 두번째는 ‘중국과 협력해갈 씨스템을 만들 필요성이 있다’는 것, 세번째는 ‘표적이 없는 내셔널리즘’ ‘대단히 불건전한 내셔널리즘’의 횡행을 억제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으로, ‘동아시아 공동체라는 것은 그런 내셔널리즘을 더욱 건설적인 방향에서 흡수해나갈 하나의 운동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위협의 삭감’과 ‘상호의존관계의 확대’가 필요하며, 기능주의적인 접근방법, 제도적인 접근방법, 일체감을 양성해가는 접근방법을 제안하고, 마지막에는 콘쎕(concept) 만들기와 멤버 문제에 관해서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타나까씨는 북일국교교섭을 담당한 외무성에서 가장 탁월한 전략가로, 이 보고서에서도 진지한 의욕을 드러내고는 있지만, 이상하게도 ‘동아시아’와 ‘동북아시아’의 결합에 대해서는 명확한 사고가 나타나 있지 않다. 또한 중국과의 대화·협력을 어떻게 해갈 것인가에 대해서도 명확한 방침이 제시되어 있지 않았다. 이 점은 이 평의회 이후의 토의에서도 해결되지 않은 것 같다.

‘동아시아 공동체’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한·중·일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이라면, 그 지리적 범위는 그야말로 ‘대동아공영권’과 다름없다. 그렇다면, 과거의 그 꺼림칙한 이미지를 완전히 불식한 새로운 지역의식에 입각해 새로운 ‘동아시아’ 지역, ‘동아시아 공동체’(일본), ‘동아협동체’(중국·한국)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한국·중국과 일본의 화해, 상호이해, 협력이 근본이 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러나 코이즈미 수상은 야스꾸니신사(靖國神社) 참배에 집착하고 있어, 중국 방문이 아직도 거절당한 상태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중국과 일본 사이의 심리적인 소외가 진행되어, 우익적인 세력은 중국에 대한 ODA(정부개발원조)를 축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 상태이기 때문에 ‘동아시아 공동체’를 당당히 국민 앞에서 논의할 수 없는 것이리라.

지난날의 일본은 조선을 합병하여 조선인의 황국신민화를 추진했고, 만주국을 건설한 후 ‘일본·만주·지나’의 제휴, ‘동아협동체’ 건설을 중국에 촉구했다. 당연히 중국인에게 거부당하자 일본은 ‘동아신질서’를 언급하기 시작했고, 동남아시아에서 전쟁을 확대하고 ‘대동아공영권’ 건설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그 부정되어야 할 역사를 상기한다면, 남북한과 더불어 중국과 진실로 협력하여, 아니 오히려 중국을 중심으로 ‘동아시아’를 건설한다는 태세가 아니면 안될 것이다. 한국·중국과 마음을 연 협력관계를 확립하지 않으면, ‘동아시아 공동체’는 얻어질 수 없을 것이다.

두번째 문제는 ‘동아시아’와 ‘동북아시아’의 관계이다. 동아시아공동체평의회 회장 나까소네씨는 지난 1월 9일자 요미우리신문의 기고문에서 2005년 일본의 국가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현대에는, 다음에 성립할 ‘헤이세이(平成)헌법’과 현재 동아시아에서 자유무역협정 망(網)이 전면적으로 성립됨에 따라서 수반될 ‘동아시아경제협력기구’와 ‘미일안보조약’에 의한 21세기 새로운 일본이 출현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헌법개정, 미일안보, 그리고 동아시아 공동체를 나열하여 언급하였다. 이것은 실로 진솔한 희망을 설명한 것이지만, 이것으로는 ‘동아시아 공동체’가 매력있는 것이 되지 않을뿐더러, 이 정도의 자세로는 ‘동아시아 공동체’가 애당초 성립될 리도 만무하다.

‘동아시아 공동체’를 고민하는 아세안 국가들은 미국을 포함시킬 생각은 없다. 일본측에서도 동아시아공동체평의회의 토론에서 하따께야마 노보루(磠山襄) 전 통산성(通産省) 심의관은 미국을 “동아시아 공동체에 포함시킬 필요는 물론 없다”고 발언하고 있으며, 케이오오(慶應)대학의 소에야 요시히데(添谷芳秀) 교수도 “미국을 멤버로 넣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합의된 점이라 생각한다”고 밝히고 있다. 즉, ‘동아시아 공동체’에 미국을 포함시키지 않는 방향이 우선의 출발점이 되어 있다. 이것은 동아시아 국가들과 미국의 관계에 미묘하면서 의미있는 변화를 초래할 것이 틀림없고, 그 변화가 좋은 일이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안전보장도 경제도 미국이 있고 나서의 동아시아, 미국에 전적으로 의지해온 동아시아에서 탈피하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까소네씨의 비전은 ‘동아시아 공동체’까지는 나아가지 않은 채 ‘동아시아 경제협력기구’라는 정도에 한정되어 있으며, 헌법을 개정한 일본이 미국과 더욱 일체화하는 것을 통해 동아시아의 안전보장을 담당하려는 것인 듯하다. 이는 중국과 대항하는 길,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립하는 길이 아닌가.

물론 미국과의 관계가 지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일본에서는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며, 전혀 다른 의미에서 북한(원문에는 ‘北朝鮮’으로 되어 있으나 ‘북한’으로 표기―옮긴이)도 그럴 것이다. 미군 10만명이 일본과 한국에, 동북아시아 지역에 주둔하고 있다. 이 지역의 앞날을 고려할 때 미국을 배제한다는 것은 미국을 몰아낸다는 의미이며 현실성이 없다. 한편에서 미국을 포함하지 않는 ‘동아시아’를 구상한다면, 다른 한편에서 미국을 포함한 장(場)을 고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즉 ‘동북아시아’를 상정하는 일이다. 지역주의를 말할 때 ‘동북아시아’를 생각하지 않고 ‘동아시아’를 생각하는 것은, 일본의 입장에서 보자면 현실도피에 지나지 않는다.

‘동아시아 공동체’를 적극적으로 책임지려는 자세를 지닌 아세안 국가들은 아세안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동남아시아 공동체이며, 안보·경제·문화 공동체라고 결의했고, 일본은 2003년 12월의 선언에서 그것을 지지한다고 표명한 바 있다. 그런 동남아시아 공동체와 한·중·일이 결합한다면 제각각 결합하는 것이 아닐 것이고, 삼국이 동남아시아 바깥의 지역에서도 신뢰협력관계를 만드는 데 노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동북아시아에서 새로운 협력관계를 만들어내고,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의 결합을 추진하는 것이야말로 ‘동아시아 공동체’를 충실한 것으로 탄생시키는 방법이 아닐까.

이 점에서 흥미로운 뉴스가 새해 벽두에 전해졌다. 요미우리신문 1월 4일 석간 보도이다. “부시정권은 미국을 배제한 형태로 동아시아의 틀짜기가 추진되는 것에 강한 불안을 품고, 그 대항책으로 한·미·일·중·러의 5개국에 의한 틀짜기의 검토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 이제까지 라이스 대통령 보좌관 등이 북한의 핵문제를 둘러싼 6자회담을 핵문제 해결 후 안전보장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