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금희 金錦姬

1979년 부산 출생.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 등이 있다. novelist79@hanmail.net

 

 

 

장편연재 1

경애(敬愛)의 마음

 

 

1. 공란은 곤란하다

 

그의 차로 말할 것 같으면 그의 인생을 모두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데 일단 다섯 사람이 탈 수 있지만 뒷좌석에 짐이 가득 차 있고 조수석은 조수석대로 당장 필요한 자질구레한 소지품들이 쌓여 있기 때문에 사실상 그 차는 오직 그, 공상수 한 사람을 위한 차였다. 거기에는 회사를 10년째 다니고 있는 샐러리맨답게 수많은 카탈로그가 있었다. 카탈로그들은 크기도 다양했고 당연히 색도, 종이의 종류와 페이지 수도, 낡은 정도도 인쇄의 톤도 그리고 냄새도 달랐다. 그 냄새는 분명한 축적의 냄새, 오랜 시간 부식과 흡착이 이루어진 뒤에야 나는, 종이 본연의 것이 다 날아가 주변환경에 순응하고 그 결과 완전한 변화가 이루어진 냄새였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상수가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양복에서 나는 땀 냄새, 혼자 끼니를 때울 때 애용하는 편의점 도시락 냄새, 햄 냄새, 볶음김치 냄새, 돼지고기볶음 냄새, 돈가스소스 냄새, 삭막한 인스턴트의 세계에 한줄기 위안 같은 샐러드소스 냄새, 그리고 독특하게도 실 냄새였다.

상수는 그런 자동차를 몰고 다니며 열심히 일했다. 주로 공장을 대상으로 미싱을 팔았고 한번 계약을 체결하면 수백대의 기계가 넘어갔다. 물론 그런 행운은 자주 일어나지 않았다. 상수의 그런 과도한 노동은 일종의 인정 투쟁이기도 했다. 그는 아버지의 인맥을 통해 입사한 이른바 낙하산이었기 때문이다.

미싱 영업을 한다고 그가 소형 미싱 따위를 들고 다니며, 언제라도 고객이 원할 때 상품을 제공하기 위해 몸체와 페달과 모터 따위를 트렁크에 보관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면 오산이었다. 어차피 그가 파는 미싱의 종류는 많고 다양해서 그것들의 실물을 보여주기는 불가능했다. 그래도 그는 그 미싱이라는 것의 실물을 환기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다니긴 했는데 그것이 바로 실이었다. 그는 미싱을 팔기 위해 미싱에 대해서만 설명하는 것은 하나마나한 영업이라고 생각했다. ‘여지’를 주지 않으니까. 여지는 상수에게 중요했다. 삶에 있어 숨구멍 같은 것이었다. 그런 것이 없는 삶은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상수에게는 울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일단 상수가 사랑하고 헤어진 여자들을 생각하면 언제든 눈물이 나왔다. 정말 현실에서 연애했던 이들은 많지 않고 대부분 소설과 영화에서 만나고 헤어진 이들인데 상수는 그 사연을 떠올리면서 자주 울었다. 지난밤에는 중학생 때 읽었던 『제인 에어』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겨울이 왔지만 창문에 커튼이 드리워져 있는 게 싫어서 상수는 맨창 그대로 겨울을 났다. 밤이면 코끝이 알싸해질 정도로 공기가 차가워지곤 했다. 그렇게 차가워진 공기에 코를 담근 채 상수는 모로 누워 이불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우선 제인 에어가 어린 시절, 불우 아동들을 위한 기숙학교에 갔을 때 경험했던 그 교사(校舍)의 차가운 공기가 상상되어 울었고 로체스터에게 숨겨둔 부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혼자 도망치며 쌓인 눈을 헤쳐나가야 했을 때 그녀가 경험했을 눈의 통증그 아름다운 것의이 어땠을까 헤아리면서 슬퍼했다. 그 작고 가녀린 몸으로 그것이 침투했을 것이었다. 처음에 작고 깨끗하고 포근해 보이는 것이 차갑게 얼어붙었을 때에는 얼마나 쓰라린 느낌을 주는지. 그건 사랑이라는 것이 사라지면서 남기는 날카로운 상처와 같았다.

사실 상수는 대부분의 시간을 짝사랑을 하며 보냈기에 그 상처에 대해 이렇다 할 실감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상수는 사랑을 두고 한없이 도망치는 제인 에어의 고통에 늘 감정 이입하곤 했다. 사랑의 정념을 이기고 결별과 부재라는, 인간으로서 가장 견디기 힘든 상태를 극복하며 앞에 무엇이 펼쳐질지도 모르는 허허벌판을 목숨을 걸고 달려가야 하는 상태. 그것이 상수가 즐겨 빠져드는 상상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실연의 상태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어딘지 영웅 이야기나 출세담을 연상시켰다. 물론 상수는 실연도 하지 않았고 영웅도 아니며 출세하지도 않았지만 적어도 독서가 불러일으키는 그 광폭의 상상 속에서는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기분을. 기분만은 확실했다.

상수가 영업을 하면서 실을 가지고 나가는 것 역시 그런 맥락의 감정적 접근이었다. 상수는 ‘실’이야말로 기계와 거리가 멀고 아날로그적이라서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이때 움직이는 건 구입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따지고 계산하는 영역이 아니라 온갖 기억과 향수 같은 것을 건드려 얻는 감정의 영역이었다.

상수는 그렇게 기계가 아니라 그 기계가 감아올릴 실을 보여줌으로써 사장들이 공장을 돌려 마침내 손에 쥐게 될 실물의 세계티셔츠일 수도, 삼각팬티일 수도, 등산복일 수도, 베갯잇일 수도 있는를 환기함으로써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다. 그건 기계라는 것이 표상하는 수많은 절차들,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을 지불하고 기계를 들이고 당연히 잔금을 치르고 기계를 돌려야 하니까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노동자들을 고용해야 하니까 반드시 임금을 주어야 하고 임금은 해마다 인상되고 그렇지 않으면 노동자들의 스트라이크가 있고 그런데 기계는 기계니까 언제라도 고장날 수가 있고 그러면 수리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스트라이크가 심하게 일어난 경우에는 유리창 수십장과 당연히 기계들이 손상될 수 있으니까 조심해야 하고 되도록 기계는 망가지지 않아야 하는데 화난 노동자들이 기계를 부수면 그것도 권리 주장을 위한 것이니까 그 비용도 생각해야 하고 그런데 기계를 부순 자들은 그대로 두면 안 되고 어떻게든 손해배상 청구를 해야 하는데 그러다가 원한을 사서 개인적인 린치를 당할 수도 있으니까 그럴 수는 없고 아무튼 기계들을 지켜내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을 수도 있고 사업이라는 게 한순간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가족들을 지켜내지 못할 수도 있어서 사실상 다 물거품인데 기계를 들이는 일 따위는 하지 말고 그냥 부동산 투기나 할까…… 이런 생각을 못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상수는 봉투에 카탈로그와 실을 넣어서최종의 생산물에 대한 부분의 실감이 가능하게 준비하면서지난 10년을 영업사원으로 보내왔다.

 

그 결과 상수는 다른 입사동기와 달리 팀장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팀장대리라는 어색한 직함을 단 채 회사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회사에서 팀장대리란, 팀장은 팀장인데 팀원이 한명도 없는 사람을 일컬었다.

 

1953년 휴전 직후 일본과 기술 합작을 통해 설립된 반도미싱은 오래된 회사답게 직제나 운영 시스템을 좀처럼 바꾸지 않는 보수적인 분위기였지만 상수를 위해 팀장대리라는 직함을 고안해내는 데는 간부들도 모처럼 융통성을 발휘했다. 승진 사유는 역설적이게도 상수의 극심한 감정기복이었다. 발작적으로 터지는 눈물과, 긴장과 불만이 일 때마다 시작되는 그 흐억어억 응앵옹쵸키포키 하는 뜻 모를 혼잣말이 해당 층의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었으므로 나중에는 영업이사의 방을 줄여 상수의 독방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 독방을 만들게 된 명분을 붙이기 위해서라도 상수에게는 승진이 필요했고근속기간에 따라 컨베이어벨트처럼 불가피하게 차례가 돌아오는 승진이하지만 승진을 할 정도로 영업성과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팀장은 팀장이지만 ‘대리’라는 제한이 붙어야 했다.

간부들은 그런 회의를 하며 상수의 신입 시절에 대해 오래도록 잡담했다. 상수가 입사했던 2007년 말에, 그때는 뭔가 ‘나가는’ 분위기였다고 그들은 기억했다. 건설회사 평직원에서 사장까지 올라간 이가 시장이 되고 대통령이 된 그 불도저 같은 신화가 샐러리맨들의 심장을 뛰게 하던 때였다. 뭔가 한번 해볼 수 있을 듯한 분위기였다. 영업부에서는 한동안 “이명박 출장 다녀오겠습니다” “이명박 퇴근하겠습니다” 하는 메소드식 인사가 유행했다. 그런 인사는 꼭 거수경례와 함께 하게 됐다. 회장은 대통령 후보였던 그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를 두권 구입해 직원들이 돌려보게 했다. ‘비치용’이라는 라벨이 붙은 책은 겉장이 나달나달해질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무궁한 번영을 기원합니다’라는 친필 사인이 적힌 면지는 곧 떨어져나갔고 회장이 직접 그렇게 빈 페이지를 만든 직원을 찾으려고 했지만 누가 그것을 뜯어가 소중히 간직했는지는 영영 비밀로 남았다.

간부들은 그땐 상수도 어떤 희망과 신열에 붙들린 채 밤잠도 자지 않고 미싱 카탈로그를 차에 싣고 방방곡곡을 다니더니만 지금은 어떻게 되었나, 생각했다. 지금은 어떻게…… 가여웠다. 상수의 자동차는 오래된 소형차이며 자가이기는 하지만 15평짜리 빌라에 산다. 결혼은커녕 연애라도 하는지 알 수 없고 계속해서 동료인 김유정 팀장을 지독히 짝사랑하는데 상수는 그 짝사랑에 대해 이상한 신념이 있어서 누가 말려도 듣지 않았다. 상수의 그 짝사랑은 삭막한 사무실에 덩그러니 놓인 노란색 프리지어처럼 어떤 안쓰러운 정조의 애틋함을 유지한 채 계속됐다.

하지만 그런 잡담들은 기만에 가까웠다. 그들이 상수의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는 상수를 그토록 연민해서가 아니라 상수의 부친이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인데다, 회장의 재수학원 동기였기 때문이었다. 상수는 쉽게 말해 낙하산은 낙하산인데 낙하한 후에 회장이 관심을 두지 않아서 끈이 다 떨어져버린 낙하산이었다. 상수가 회사에서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자를까 싶다가도 간부들이 그러지 못하는 건 그 때문이었다. 원래 오너들은 관심이 없다가 불현듯 떠올려 닦달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상수 같은 일개 영업부 직원의 거취를 회장에게 매번 상의할 만큼 머저리인 간부는 없어서 상수는 이렇게 저렇게 10년을 흘러올 수 있었다. 일단 착륙은 했지만 발을 완전히 붙이지는 못하고 회사에 수상한 기운이 불어닥칠 때마다 그 몇폭의 거추장스러운 낙하산을 펼쳤다 접었다 하며 은근한 불안을 견뎠다.

 

상수는 두달 동안 어찌 되었든 팀장대리라는 직위에 익숙해지기 위해이를테면 고립된 사무실의 환경과, 책상과 의자의 높이와 선반의 위치와 어느 쪽으로 걸어야 가장 빠르게 출입문으로 나가거나 혹은 돌아올 수 있는가, 창문을 얼마만큼 열어놔야 말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는가 등을 고민하며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아무리 ‘대리’라는 이상한 꼬리가 붙었어도 팀장은 팀장인데 팀원이 한명도 없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고 부장에게 팀원을 배정해달라고 요구했다.

“팀원을?”

부장은 놀랐다. 그러면서도 팀장이 팀원을 요구하는 데 놀라는 자신이 겸연쩍긴 했다.

“저도 이 팀을 어떻게 끌어갈지 고민했거든요. 팀을 조직해서 파트너십을 통해 역량을 강화하고 해외, 특히 베트남, 베트남을 공략해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요.”

“베트남?”

부장은 이렇게 되묻고 나서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간부회의에서 그렇지 않아도 상수에게는 국내영업이 아니라 해외업무를 담당하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는 했다. 영어를 제대로 못하니까 바이어와 싸울 일이 없고 그러면 일감이 떨어져나갈 일도 없을 테니까.

상수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열심히는 했지만 한국의 공장주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었다. 심지어 거래처 사장들과 다투기까지 했다. 여자가 있는 술집에 가기를 거부한다든가, 물품 계약서를 ‘가라’로 융통성 있게 작성해주지 않는다든가, 중간관리자들에게 커미션을 챙겨주지 않는다든가, 정치 얘기를 하다가 불화한다든가 했다. 내내 무기력하게 위축되어 있다가도 일단 맘먹으면 외골수로 행동하는 것이 문제였다. 지난해 대구에서 김유정 팀장이 맞선 보는 자리에 무작정 들이닥친 일이 그랬다. 부장은 그 생각만 하면 아직도 가슴을 쓸었다. 괜히 맞선 한번 주선했다가 기분만 잡친 거래처 사장이 공상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기 때문이었다. 동료 직원이 거래처 사장의 주선으로 맞선 보는 현장을 급습해 강짜를 놓고, 그 자리를 만든 거래처 사장에게 찾아가 욕설을 퍼부은 사건이라면, 그 사장도 사장이지만 회사 명예도 얼마나 실추시키는 일인가. 게다가 상수는 그 자리에까지 실타래두어명의 목을 너끈히 조를 수 있을 것 같은, 웬만한 구렁이만한를 가방에 넣고 가는 바람에 그것을 위해의 도구로 쓰려 했다는 의심까지 받았다. 그게 뭐라고 보조가방에 소중히 넣어 갔어, 부장은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혀를 춧춧춧 찼다. 그 대구 염천 더위에 양복에다 륙색에다 실에다 카탈로그에다 상심한 사랑에다 울분까지 챙겨 들고.

상수가 그냥 그런 집 자식이 아니라 다 저물기는 했지만 국회의원까지 지낸 정치인 자식이라는 것을 자신이 강력하게 어필하지 않았다면 일은 얼마나 커졌을지 몰랐다. 사실 상수의 양어머니가 손을 쓴 것이지만. 그때 부장은 상수의 가족과 처음으로 소통이라는 것을 해보았는데, 그동안 은근히 깔보던 상수에 대해 좀 다른 느낌을 갖기는 했다. 양어머니의 목소리는 상당히 젊었고 전화를 자기가 필요할 때 걸고 원할 때 끊어버린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다른 사람을 부려본 태가 났다. 그래 우리 애는 지금 어딨는데요,라고 묻다가도 골치 아프네, 시끄러워지겠네, 하고 은근히 반말을 섞어 혼잣말하고 돈은 뭐 돈으로는 안 되겠지, 사장이라니까, 그렇게 상황을 판단하더니 내가 전화를 돌려볼 데가 있으니까 좀 기다려보세요, 하더니 전화로, 오직 전화로 오전 중 고소 취하를 끌어냈다.

“그 새끼 어느 집 자슥이야? 뭐 전화가 이리 많이 와?”

거래처 사장은 부장에게 역시 전화로 물었다. 그래, 무슨 집인가 대체 공상수네 집안은. 얼마나 유복하고 위세있으며 인맥은 얼마나 대단한가. 아니 그런 건 사실 상관없고 대체 회장과 얼마나 친한가. 골프는 치는가. 삼청동 게장집이나 을지로 냉면집, 아니면 동부이촌동 재팬타운에 있는 오래된 스시집 같은 데를 같이 가는가. 그런 데는 격조있고 맛이 훌륭하며 특히 스시집은 1인분에 8만원인데, 만약 그렇다면 보통 사이가 아닐 텐데.

일이 수습되고 부장은 김유정 팀장에게 휴가를 주었다. 아무래도 충격을 받았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유정은 하루만 월차를 썼다. 그리고 직접 거래처 사장을 찾아가 이번 일에도 불구하고 거래에는 이상이 없을 것임을 확인받고 왔다. 중국으로의 이전을 앞두고 반도미싱에서 적어도 8000만원 상당의 기계를 구입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상황을 보고하면서 유정은 “사실 공상수씨는 뭐 한 게 없어요”라고 사실인지 덮어주려는 건지 모를 말을 했다.

“그래도 곤란하지, 공상수씨가 그러면. 김유정 팀장이 곤란하잖아.”

“곤란했죠, 부장님, 당연히 곤란하죠.”

사실 유정은 그렇게 곤란하지는 않았지만 부장 말에 장단을 맞추려고 하다보니 정말 곤란했던 것처럼 느껴졌다. 곤란하지 않았던 이유는 상수가 그럴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상수가 유정이 선을 본다는 사실을 알고 전날부터 전화를 하고 유정은 받지 않고 나중에는 그냥 휴대전화를 꺼버렸을 때, 일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몰랐다. 상수는 그런 단절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유정이 보기에 상수에게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너무 많은 것들이 있었고 그 모든 것의 배면에는 단절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그 공포는 여러 면에서 상수를 괴롭혔다. 예를 들어 자기가 진행한 계약건과 관련해 거래처에 입금해야 할 일이 있으면 그것을 담당하는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전화를늦지 않았는데도걸었다. 모든 일은 일어났다가 일어나지 않았다가 생겼다가 생기지 않았다가 가까이 있다가 멀어졌다가 하며 사이사이 틈을 갖는 게 정상이지만 상수는 그런 단속(斷續)의 리듬을 견디지 못했다. 상수에게 단속이란 단절이고 그것은 불안과 공포와 이어져 있었다. 거기에는 인생에 대한 무시무시한 비관주의가 자리하고 있었고 유정도 그 사연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그것이 삶을 더 비관적으로 만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것은 또 이 상황을 단숨에 극복하겠다는 허황되고 과장된 의지를 순식간에 불러일으켜서 유정으로서는 그 불안과 공포가 극복의 대상인지, 습기 먹은 식빵처럼 순간순간 무기력과 허무에 젖는 상수에게 생의 의지를 불어넣는 동력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바로 그런 동력이 일어날 때 상수는 어디로든 전화했다. 정작 대면해서는 낯을 가리면서도 전화로는 타인과의 접속이 얼마든지 가능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물론이고 제주나 비양도나 울릉도나 지금은 문을 닫고 만 개성공단이나 오오사까나 베트남의 하노이나 응에안이나, 인도 뭄바이나 가릴 것 없이 상수의 전화는 전지구적으로 뻗어나가 불화를 일으켰다. 시차를 생각한다면 거의 24시간 내내 지구상의 누군가는 상수의 단절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 따른 히스테리로 고통을 겪어야 하는 셈이었다.

유정이 짐작하는 상수의 트라우마는 어려서 엄마를 잃고 아버지는 늘 바빴으며 친형이 폭력적이었다는 것 정도였다. 그리고 친구가 없었고 지금도 없다는 것. 유정이 판단하기에 상수에게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어떤 실감, 자기가 상대하고 있는 ‘누군가’에 대한 실감도 그래서 부족한 것 같았다. 그 실감은 상대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고 그렇기에 기꺼이 믿어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누군가는 상수가 요청한 무언가만 하고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 말이다. 그는 월급의 몇배에 해당하는 노동을 반드시 뽑고야 마는 회사의 특성상 운명적으로 과로에 시달려야 하는 누군가이고 더 근본적으로는 피와 땀과 호르몬과 생체리듬이 변화무쌍하게 흐르는 하나의 인간이라는 것. 그래서 그 누군가는 뭔가를 잊을 수도 있고 착오를 일으킬 수도 있고, 몸이 아플 수도, 천성이 워낙 느리거나 느긋해서 상수가 원하는 속도로 일을 처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그에게도 상수처럼 일상의 평온을 흔드는 신변상의 이유들이 늘 일어난다는, 그의 인생도 상수의 것과 다르지 않다는 감각이었다. 그 감각은 살다보면 휘발되게 마련이라서 유정은 언제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건 노력하는 거였다.

하지만 슬프게도 상수는 그런 감각이 아주 부족해 보였다. 특히나 소비, 거래, 업무의 영역에서는. 과격하게 말하자면 일종의 ‘버튼’처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보행자가 눌러놓으면 얼마 지나 녹색불이 들어오는 횡단보도의 신호제어기처럼, 자극을 주면 정확히 반응이 와야 하는. 그렇게 몇초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발을 구르며 초조해하겠지만. 사실 회사에서 그렇게 피아(彼我)를 ‘다른 존재’로 구분해 인색하게 구는 경우는 직급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훈장처럼 늘어나는 것이지만 문제는 상수가 이제 겨우 ‘팀장’ 하고도 ‘대리’일 뿐이라는 데 있었다. 상수가 아무리 그렇게 해도 당사자들은 당사자들대로 코웃음 쳤고 회사 내에서 인심만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