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애란 金愛爛

1980년 인천 출생. 2002년 대산대학문학상으로 등단.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 등이 있음. brokenname@empal.com

 

 

 

가리는 손

 

 

개수대 앞 창문을 열어 바깥을 본다. 해수면이 어제보다 조금 솟아 있다. 오전내 비가 내렸다. 비가 오면 십자가도 물에 젖는다. 낮에 시장에서 산 우럭 두마리를 도마로 옮긴다. 칼 쥔 손에 힘을 주자 생선뼈와 근육, 살 으스러지는 감촉이 몸 전체로 번진다. 손아귀 속 떨림이 흐린 원을 그리며 내 몸 가장 먼 데까지 퍼진다. 반쯤 살아 있는 식재료를 만지면 늘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든다. 금기이되 아주 오랫동안 어겨온 금기를 깨는, 죽은 것을 죽이는, 심드렁한 희열과 혐오가 인다.

 

비늘과 내장을 제거한 우럭을 들통에 깐다. 거기 대파와 생강, 청주를 넣고 팔팔 끓인다. 익힌 살은 따로 발라 한곳에 두고, 몸통뼈와 대가리만 다시 삶는다. 먼저 미역국에 쓸 육수를 내야 한다. 뼈 국물. 어릴 때 나도 뼈를 고아 만든 음식을 먹고 자랐다. 그중에는 가물치나 미꾸라지처럼 생물을 통째 곤 것도 있었다. 어머니가 강릉 분이라 우리 집은 생일에도 미역국에 양지 대신 우럭을 넣었다. 독립 후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이제 나도 그렇게 한다. 특히 내 생일과 애 생일에 그렇게 한다.

 

들통 안 공기방울이 기세 좋게 올라오자 식재료가 저희끼리 부대끼며 몸을 뒤집는다. 대파 줄기 사이로 입을 반쯤 벌린 우럭 대가리도 보인다. 반투명한 눈알이 그새 희게 익었다. 국자로 불순물과 거품을 걷어내며 아이 생각을 한다. 다른 존재가 될 수 있었지만 내 아이로 태어난 아이. 다른 데가 아니라 이곳에 온 재이. 아기 땐 이유식 삼킬 줄도 모르고 빨대로 물 먹는 법조차 몰라 일일이 가르쳤는데. 요샌 식탁에서 수저질하는 모습 보며 굵직해진 뼈마디에 새삼 놀란다.

 

가스불을 약하게 줄이고 육수가 우러나길 기다린다. 적어도 몇십분은 있어야 해 소매를 걷고 개수대에 쌓인 잔설거지를 한다. 칼과 나무도마에 거품을 칠한 뒤 식초로 한번 더 씻고 스테인리스 볼과 채, 접시, 숟가락도 닦는다. 숟가락은 입에 직접 들어가는 기구라 더 공들여 헹군다. 숟가락을 닦을 때마다 맨손으로 아이 입속 만지는 기분이 든다. 아마 애가 어릴 때 손가락에 거즈를 감아 양치해준 기억 때문일 거다.

 

출산 후 모유 수유에 꽤 애를 먹었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몸에 젖이 돌게 하기 위해 밥을 먹고, 또 밥을 먹고, 밥을 먹은 기억이 난다. 산모용 거들을 입고 양쪽 가슴을 드러낸 채 눈물을 뚝뚝 흘리던 내 모습과 산바라지 온 엄마가 한달 내내 끓여준 미역국, 집 안을 가득 채운 우럭 비린내 같은 것도. 그땐 내 젖에서도 그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젖꼭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희뿌연 액체가 꼭 뼈 국물 같았다.

 

한동안 나 자신이 비리고, 뜨겁고, 미끌미끌한 덩이로 느껴졌다. 이름이 지워진 몇십 킬로그램짜리 영양공급 팩이 된 느낌이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나를 그렇게 대했다. 그게 격려나 존중의 형태였대도. 영화나 드라마 속 산모는 내색 않던데, 나는 수유가 참 힘들었다. 젖 뭉침에, 유선염증에 유두 끝이 불에 덴 듯 쓰린데, 배가 고파 우는 아이에게 젖을 물릴 수도 뺄 수도 없어 나도 같이 울어버린 게 몇번이었다. 더구나 돌 무렵엔 이 나느라 잇몸이 간지러운지 재이가 내 젖꼭지를 자주 깨물었다. 어느 땐 하도 세게 물어대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아이를 던질 뻔한 적도 있었다.

 

그 고생을 하고도, 막상 젖을 끊을 땐 아이에게 미안해 조금 울었다. 속이 후련한 한편 우리가 함께 보낸 어느 한 시절이 비로소 끝났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건 아마 재이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익숙한 것과 헤어지는 건 어른들도 잘 못하는 일 중 하나니까. 긴 시간이 지난 뒤, 자식에게 애정을 베푸는 일 못지않게 거절과 상실의 경험을 주는 것도 중요한 의무란 걸 배웠다. 앞으로 아이가 맞이할 세상은 이곳과 비교도 안 되게 냉혹할 테니까. 그렇지만 그땐 나도 어려서 그곳이 이토록 차가운 곳일 줄은 몰랐다. 이 세계가 그 차가움을 견디는 방식으로 누군가를 뜨겁게 미워하는 언어를 택하는 곳이 되리라곤 상상 못했다.

 

물에 불린 미역을 손으로 꾹 짜 적당한 크기로 썬다. 불에 달군 솥에 참기름을 두르고 미역을 넣자 사방에 작은 기름방울이 튄다. 손목을 바삐 놀리며 미역을 뒤적인다. 늘 해오던 대로,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손과 달리 마음은 아까부터 다른 곳에 가 있다. 낮에 제과점에서 들은 이야기가 계속 신경 쓰인다. 계산대에 케이크 상자를 두고 지갑을 꺼내는데 뒤에서 익숙한 얘기가 들렸다. 손에 케이크를 든 채 서둘러 제과점을 나오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자리에서 뭐라도 반박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누군가 나를 알아봤을 수도 있는데. 내가 가만히 있는 게 아이 일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였으면 어쩌나 후회됐다.

 

이웃 여자들이 식은 커피를 앞에 두고 얘기한 그 영상은…… 나도 봤다. 지역에서 난리가 난데다 여러 인터넷신문에 실려 모를 수 없었다. 처음에는 끝까지 못 보고 고개 돌렸지만, 용기 내 다시 재생 단추를 누른 건 거기 우리 아이가 있어서였다.

그거 뭐라 그러지? 그런 애도 있던데. ……맞다, 다문화.

응, 나도 봤어요. 확실히 눈에 띄더라.

엄마가 아니라 아빠가 동남아라면서요.

그래? ……뭐가 아쉬워서?

걔도 한패라면서요?

댓글 보니까 주동자라던데.

아니, 걔는 목격자래요.

그걸 어떻게 믿어. 원래 진짜 보스는 주먹 안 쓰잖아.

그러게, 아무래도 그런 애들이 울분이 좀 많겠죠?

그나저나 참 큰일이네.

그렇죠?

그죠.

……

사람이 죽었으니까……

……

……

그죠.

 

공기 중에 엷은 탄내가 난다. 주걱을 빠르게 저으며 정신을 챙긴다. 미역 가장자리가 희끗하다. 옆 들통에서 뼈 국물을 한 대접 퍼 솥에 붓는다. 촤아아 소리와 함께 연둣빛 기름이 둥둥 떠오른다. 사람들이 말한 그 ‘소문’은…… 나도 아이에게 물은 적 있다. 몇번 망설이다 어렵게 꺼낸 질문이었다. 재이는 한없이 서글픈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 어떻게 엄마마저 그럴 수 있느냐는 듯 침울하게 답했다.

엄마, 나 아니에요.

나는 이번만은 절대 실수해선 안 되는 시합에 나간 선수처럼 아이를 신중하게 살폈다.

……

거짓말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렇지?

응, 아니에요. 난 걔네들 알지도 못한다고.

순간 얼마나 안도했는지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다. 그간 혼자 마음 고생했을 아이를 껴안으며 사과라도 하고픈 심정이었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냉동실 문을 열어 마늘을 꺼낸다. 다진 마늘을 지퍼백에 넣어 격자무늬 형태로 얇게 얼려둔 거다. 그중 한칸을 툭 가르며 시계를 본다. 오후 여섯시가 조금 넘었다. 아이가 보습학원에서 돌아오려면 아직 한시간쯤 남았다. 불고기는 어제 미리 재워뒀으니, 시간 맞춰 밥 안치고 갈치만 구우면 된다. 아, 그리고 케이크도 있지. 싱크대 양념칸에서 천일염을 꺼내 국에 간을 한다. 그런 뒤 숟가락을 내려놓고 잠시 가스레인지 불꽃을 본다. 태곳적 사람들도 저녁에 불을 피웠겠지. 두렵거나, 허기지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고 싶을 때. 지금은 그중 어느 때일까? 보글보글 국 끓는 소리가 평온하게 집 안을 채운다. 오늘은 재이의 열다섯번째 생일이다.

 

*

 

모유 말고 재이가 처음 먹은 음식은 흰 쌀죽이었다. 젖 뗄 무렵 약속이라도 한 듯 아이 입에 새싹처럼 작고 흰 뼈가 돋았다. 인간이 가진 뼈 중 유일하게 바깥으로 드러난 거였다. 재이는 이유식에 잘 적응했다. 새말 배우듯 난생처음 접한 ‘맛’들을 하나하나 익혀갔다. 오물오물 생각과 판단이 깃든 얼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