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은 이미 많다

박진영

박진영                             

이제껏 지금처럼 옷이 풍요로웠던 시절은 없다. 계절마다 저렴한 가격으로 쏟아져 나오는 옷 덕분에 우리는 필요할 때 언제든 부담 없이 새 옷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자라 H&M 유니클로 갭 망고 아르켓 미쏘 스파오 탑텐 에잇세컨즈 등 당장 떠오르는 국내외 SPA(개발 및 생산부터 유통·판매를 직접 하는 의류회사) 브랜드만 해도 이렇게나 많다. 큰 의류 매장들은 언제나 신상품들로 꽉 차 있고, 그곳에서 수시로 사들인 옷들로 우리의 옷장도 꽉꽉 채워져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옷은 많은데 입을 옷이 없다’는 말을 달고 산다. 질렸거나, 유행이 지났거나, 이미 가지고 있는 옷을 더이상 입고 싶지 않은 이유야 가지각색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옷을 또 장바구니에 담는다.

 

패스트패션은 옷을 쉽게 사고 버리는 소비문화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PA 브랜드들이 평균 3~4주를 주기로 새로운 디자인을 내놓으면서 유행이 빨라졌고, 부담 없는 가격 덕분에 누구나 유행을 쉽게 따라잡을 수 있게 되었다. 가격이 저렴한 만큼 소비자들은 소비 앞에서 망설일 필요가 없어졌다. 구입 후 한번도 입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비용적으로 큰 손해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저렴한 가격에 최신 유행의 옷을 구입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손해인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열심히 돈을 모아 꼭 가지고 싶었던 좋은 품질의 옷 한벌을 사는 것은 요즘의 소비 스타일이 아니다. 대다수 소비자는 저렴한 옷을 다양하게 구입해서 새로운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똑같은 옷을 여러번 입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옷을 관리해가며 입는 것을 귀찮게 받아들인다. 어차피 몇번 입지 않을 옷인데 굳이 품질 좋은 비싼 옷을 사서 잘 관리해가며 입는 것이, 저렴하게 구입해 한철 입고 버리는 것보다 비효율적이고 비경제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 스타일은 패스트패션의 목적에 부합한다. 패스트패션의 목적은 오래 입는 것이 아니라 계속 새로운 옷을 만들어 유행을 빠르게 따라잡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매년 약 800억벌 정도의 옷을 소비한다. 전세계 인구가 80억명 정도이니 일인당 평균 1년에 10벌을 구입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새 옷을 마음껏 사고 버릴 수 있는 경제수준을 가진 나라만 본다면 일인당 연간 구입 벌수는 훨씬 늘어난다. 패스트패션의 등장 이래 2000년 500억벌이던 세계 의류 생산량은 2015년 1000억벌로 200% 증가했으며, 2014년 의류 구매량은 15년 전과 비교해 60% 높아졌다. 그런데 반대로 가계 지출에서 의류가 차지하는 비용은 줄었다. 옷값이 저렴해졌다는 뜻이다. 한철만 입고 버리는 저가 의류 쓰레기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음은 물론이고, 판매되지 않은 채 버려지는 새 옷도 많다. 그렇게 버려진 옷은 전부 어디로 가는 걸까?

 

KBS 환경스페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2021)라는 다큐멘터리가 화제였다. 특히 옷으로 뒤덮여 풀이 자라지 않는 땅의 쓰레기 더미 위에서 소들이 옷을 뜯어 먹는 장면이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 입는 옷을 의류수거함에 넣으며 막연하게 ‘다른 누군가가 입어주겠지’ 생각한다. 하지만 그중에는 재사용할 만한 가치가 없는 저가 의류가 대부분이고, 그 옷들 중 겨우 5% 정도만이 한국에서 활용된다. 처리가 곤란한 나머지 옷은 다큐멘터리에서도 볼 수 있듯 중고의류 수출이라는 미명 아래 다른 저개발 국가로 보내진다. 다른 어떤 나라보다 유행에 민감한 한국은 세계 5위의 중고의류 수출국이며, 가나의 주요 거래국 중 하나다. 그리고 가나는 넘쳐나는 의류 쓰레기로 가장 고통받고 있는 나라다. 패스트패션의 부흥으로 아크릴과 폴리에스터, 나일론과 같은 저렴한 합성소재 사용량이 크게 늘어난 만큼 직물 쓰레기 대부분이 생분해되지 않으며 매립지에서 200년 이상 유해물질을 내뿜는다. 그뿐만 아니라 늘어난 중고의류로 현지의 의류 산업이나 의류 관련 고급 기술이 발전하지 못하고 사라져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패스트패션 의류들은 대부분 선진국에서 소비되지만 처치 곤란한 옷 쓰레기에 허덕이는 나라는 가난한 나라들이다.

 

패션 산업은 환경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옷을 만들고 판매하는 전과정에서 많은 탄소발자국을 남기고 환경을 오염시킨다. 패션 산업은 연간 전세계 탄소 배출량의 10%를 차지하며,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물 소비 산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속 가능한 패션을 이야기할 때 비교적 환경에 피해를 덜 끼치는 유기농 면이나 재활용 플라스틱 소재 등 친환경 소재의 사용을 내세우는 기업이 많다. 친환경 제품을 구입하는 ‘착한 소비’를 강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가 결국은 너무 많이 생산하고 너무 많이 소비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생산과 소비를 줄이는 것보다 시급한 일은 없다.

 

오늘날 우리는 전반적으로 저렴한 물건을 많이 소비하는 생활방식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이러한 습관을 바꾸고 잘못된 소비문화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적‧제도적 차원의 개입이 있어야 한다. 프랑스는 2022년부터 ‘낭비 방지 순환경제법’(AGEC)에 따라 미판매된 제품의 재고를 소각 처리할 수 없게 한다. 패션 업계에서 팔리지 않은 멀쩡한 제품을 소각하는 것은 보편적인 재고 처리 방식이다. 곤란한 재고를 처리하고, 사용자와 제품 수량을 제한하여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소각을 택한다. 하지만 프랑스와 같은 법적 규제가 있다면, 기업들은 필연적으로 생산량을 미리 조절하고 제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기업들이 재고의 순환 방법으로 기부를 선택하게 된다면, 의류 기부의 방향도 지금보다 훨씬 더 쓸 만한 제품들의 가치있는 순환이 될 것이다. 또 제품의 생산량에 따른 환경부담금을 부과하거나, 플라스틱 포장재를 엄격하게 규제하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에 대해서도 논해볼 수 있다. 이러한 조치에는 당연히 소비자의 부담이나 불편이 뒤따르겠지만,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지구의 일원인 이상 생산뿐 아니라 소비에도 공동의 책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물건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바로 인식하는 일이 필요하다. 모든 물건은 소중한 자원과 기술, 예술의 집약체임을 기억하자. 그리고 한번 만들어진 물건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일은 물건을 만드는 일보다 훨씬 더 어렵고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물건의 생애주기를 늘이기 위해 각자 노력해야만 한다.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나의 취향을 찾는 것, 저렴한 제품을 자주 구입하기보다는 좋은 제품을 하나 사는 것, 새로 사기보다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끝까지 잘 사용하는 것. 환경에는 이런 실천들이 착한 소비보다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박진영 / 디자이너, 낫아워스 공동대표

2023.5.2. ⓒ 창비주간논평